[영화읽기]
누가 생부를 무시하는가? <우주전쟁>
2005-07-27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부권상실’의 거세 공포를 보여주는 <우주전쟁>

<우주전쟁>은 꽤 현실적인 재난영화다. 우선 <인디펜던스 데이>나 <딥 임팩트>에서 보이는 ‘재난상황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유지되는 공권력과 사회질서’가 없다. “만인은 만인에 대한 늑대”라는 말처럼, 재난이 터지면 2차적인 약탈과 무질서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따라서 차를 뺏기는 위치에 섰던 주인공이 곧 배를 타기 위해 억지로 매달리던 장면이 대변하는 영화의 현실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미덕은 이뿐이다. 허문영이 언급한(511호) “포스트 9·11의 미디어에 관한 스필버그의 비평”이자, “재난의 스펙터클로부터 거리두기의 안간힘”으로 보기엔 공포의 스펙터클이 과하고, “가족주의와 계급/지역 정치학의 긴장”으로 갈음하기엔 ‘불안정한 아비의 위상’이 걸린다. 오히려 영화는 ‘포스트 9·11의 공포의 정치학’을 충실히 따른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며, 그보다 ‘생물학적 아비의 위상 제고론(提高論)’을 펼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포스트 9·11 피해의식을 강화하라

영화의 정치적 의미는 미국인들에게조차 전쟁의 명분이 희미해져가는 이때, 9·11 테러를 곱씹으며 ‘피해자-되기’를 성취하는 것이다. 즉 피해자로서의 알리바이를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외상을 재활용(recycling)하는 것이다. 재난을 접한 영화 속 미국 아이는 먼저 “폭탄 테러냐?” “유럽에서 왔냐?”고 묻는다. 재난은 곧 테러이고, 테러는 곧 이국(異國)으로 자동 연상된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반공교육의 상당 부분이 전쟁의 잔혹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곧바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각인되었기에, 연상도 자동이었다. “상기하자! 6·25” 구호처럼, <우주전쟁>이 재현하는 “외부자에 의한 미동부 지역 파괴”는 9·11 테러의 피해 경험을 감각적으로 일깨운다. 부당한 전쟁을 정당한 복수극으로 계속 믿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선(先) 피해자 되기’, 즉 피해의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생부의 위상을 제고하라, 부계혈통은 유효하다

그는 ‘개털’이다. 이혼하고 자식들은 전처와 산다.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번번이 계부와 비교된다. 전처가 잠깐 아이들을 맡긴 사이 큰일이 터졌다. 그는 일단 전처에게 아이들을 ‘배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아이들도 이를 안다). 그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책임질지 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전처의 집을 거쳐 처가로 향하는 행로에 “왜 꼭 엄마에게 데려가야 하는가? 거긴들 안전할까? 전처는 무사한가?” 따위의 고민은 없다. 아이들은 전처에게 속하고, 전처는 새 남편에게 속하니, 그러한 걱정은 주제넘은 것이다. 그의 행로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외계인을 말함이 아니다. 가장 아찔한 장면은 딸을 다른 부부가 보호하겠다며 데려가려는 장면이다. 또 지하 홀아비가 “네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보호해줄게”라 말하자, “내 딸!”이라 소리치고, 결국 그를 죽인다. 그는 결국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낸 딸을 전처에게 잘 ‘반납’한다. 그 이상의 가족화해는 없으며, 그도 더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영화가 다루는 공포의 핵심은 외계인이 아니라, ‘무능한 생부가 유능한 계부, 양부들에게 자식을 빼앗기고, 아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풀 몬티> <아이 엠 샘> <갓센드> <주먹이 운다>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는 ‘아비의 전전긍긍’이었다. 생물학적 아비면서도, 사회적 아비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사회적 ‘거세공포’가 깊이 깔려 있다. <우주전쟁>은 그러한 ‘부권상실’의 (거세) 공포를 “흡입하는 기계”에 빨려들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비를 통해 더 끔찍하게 재현한다.

애초 땅에 묻혀 있다 번개와 함께 솟는 괴물 역시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생물학적으로 자명한 모권에 비해 생물학적 근거가 불확실한 부권은 ‘모체의 점거’를 보증하는 사회적 조처(가부장제)를 필요로 하며, 가부장제의 약화는 부권을 근본부터 위협한다. 영화는 ‘부권상실’이라는 대재앙이 이미 ‘물적 근거가 취약한 부권’으로 잠복해 있다가, 현재의 이혼율 상승과 친모 양육권 인정 등의 사태로 발현된 것으로 본다(가부장제가 강한 일본은 괴물을 물리쳤다는 말도 있다). 또한 선조들의 죽음을 거쳐 DNA를 통해 유전되는 면역력이 지구인을 지켰다는 결론도 ‘혈통’을 강조하는 영화의 주제와 조응한다. 흡사 “누가 생부를 무시하는가?”라 외치는 영화는, ‘바바리맨’과 닮았다. SF라는 외투를 덮고 있지만, 짜잔∼ 보여주는 건 ‘남근에서 남근으로 이어져오는 부계혈통의 순수성’이다. 감독이 ‘할례’로 민족정체성을 삼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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