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38)의 머리색이 노래졌다. 그것도 중간부터 끝까지만 노랗다. “동네 미장원에서 염색하고 관리 안 하는 스타일” 콘셉트다. “사자 목소리를 연기하라고 해서 <라이온 킹>을 생각하고 갔는데 역시나 이건… 쩝”이었던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더빙 외출을 다녀온 뒤 6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한 <괴물>의 주인공 강두를 연기하기 위해 머리 염색을 했다. 최대한 “촌스러운 때깔”을 만들기 위해 여러번 색을 바꿔 만든 머리다. 본격적인 촬영을 코 앞에 둔 아직까지는 카메라 앞에 설 일도 몇번 없었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매일 촬영장을 나가는 것이 그의 요즘 일과다. 얼마 전에는 한겨레 영화 담당기자도 모르게 한겨레 발전기금 500만원을 내기도 했다.
괴물에 딸 빼앗긴 강변 매점아저씨 ‘강두’ 로
100억 넘는 대작에 책임감 “진짜 잘 해야죠”
“강두는 철없고 단순하고 그래서 또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인물이예요. ‘사고쳐서 애 낳고 사고쳐서 애 잃었다’는 강두의 대사가 있는데 좀 바보같기도 하고 사회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죠.” <괴물>은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강두가 한강에 나타난 괴물에게 딸을 빼앗기자 딸을 되찾기 위해 온 가족과 함께 싸우는,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어가는 대작 영화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고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변희봉, 박해일, <복수는 나의 것>을 함께 했던 배두나와 가족으로 호흡을 맞추니 그에게나 감독에게나 더없이 든든한 인력구성이다.
“아직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매일 한강을 건너는 관객들도 ‘한강이 이렇게 생겼나’ ‘한강에 이런 곳이 있구나’ 놀랄만한 비주얼을 보여줄 거 같아요. 촬영 초반에는 주로 한강 자체를 찍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림이 기가 막히더라구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괴물의 실체에 대해 송씨가 주는 작은 팁. <우주전쟁>의 오징어 스타일도, 고질라 스타일도 아닌 ‘변형된 물고기’가 연상되는 모양이란다. 그 크기도 고질라나 킹콩에 비하면 아담 사이즈에 가깝다고.
촬영장 출근 말고 유일한 일과는 매일 분당 집 앞의 공원을 뛰는 것이다. <남극일기> 흥행부진의 스트레스로 6㎏ 이상 쪘던 살을 빼고 있는데 본래 체중으로 돌아오려면 아직 2㎏ 정도 더 빼야한다고 한다. 그래도 얼마 전 강우석 감독과 마찰을 빚으며 최민식과 공동기자회견을 했을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건네자 “그때야 거의 잠도 못자고 나갔던 상황이니까요”라며 운을 뗀다. “득보다는 실이 많을 걸 예상했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소리 별로 듣지 못했죠. 그렇긴 하지만 전체 이야기의 차, 포 다 떼고 ‘내 개런티는 내가 결정한다’ ‘5억원이 뭐가 많은 액수냐’ 이런 자극적인 말만 편집돼 방송에 나오는 걸 보니 기분이 착잡하더라구요. 참, 뭐, 하여튼… 히히힛.” 아직 마음 속에 많이 쌓여있는 듯한 말과 서운함을 예의 낄낄 웃음으로 슬쩍 덮어둔다
올 초 <괴물> 계약서에 싸인할 때 그는 5억여원의 개런티를 90% 이상 투자형식으로 계약했다. “일단 100억원 이상 돈이 들어가는 영화니까 부담을 좀 줄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내 작품이다라는 자부심이나 책임감을 좀 더 갖고 싶었어요. 소액투자자인 셈인데 나한테 이익이 돌아오려면 500만명 가까이 관객이 들어야 하니까, 진짜 잘 해야 하는 거죠.”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나 대단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정도”라고 말하는 그는 한겨레 발전기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주 신문이 자리잡은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17년동안 이룬 것도 많고, 아쉬운 점도 있는 시점에서 창간 정신으로 재정비한다는 게 바람직해 보였습니다. 난 좀 더 내고 싶었는데, 아내가 말이죠… 히힛.” 진지한 이야기에서 다시 슬쩍 빠져나와 낄낄 웃음의 제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