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천재적 영화인으로 평가받는 스탠리 큐브릭. 그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문제작으로 꼽히는 <시계태엽 오렌지>가 완전 무삭제, 무수정본으로 DVD 출시된다. DVD 출시에 앞서 지난 7월 열렸던 리얼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필름 상영을 가졌는데, 그 동안 이 영화를 사설 시네마테크 등을 통해 침침한 화면과 조악한 자막으로 보았던 영화광들에게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으로 다가왔을 법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확실히 좋아지긴 했다.
그러나, 정작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나면 ‘정말 좋아진 건가? 더 나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암울한 사회 분위기, 연이어 발생하는 강력 사건들, 그리고 사람들의 희망을 점차 앗아가고 있는 사회 최고위층의 비리와 온갖 추악한 행태들이 이 영화에서 본 것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주인공 알렉스의 치유(=몰락) 과정은 단순히 화면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영화가 만들어진 지 30여년이 흐른 여기 이 땅에서도 생생한 힘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폭력과 강간, 그리고 베토벤(!)을 일생의 낙으로 삼았던 알렉스의 악행에 경악하고 거부감을 갖게 되지만, 사회에 의해 그가 즐겨왔던 모든 것을 거부하도록 세뇌된 뒤 마치 태엽 장난감처럼 비참하게 취급당하는 부분에서는 한층 더한 염증과 함께 자신들이 속한 곳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그 시기의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시계태엽 오렌지>에 그려진 세상과 지금의 현실을 대조하면, 오히려 여기, 이곳의 현실이 더욱 영화처럼 느껴진다. 방종에 젖은 사람들, 이것이 과연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각종 정책들. 세상이 정말 좋아지긴 한 건가.
DVD는 작품의 화제성에 비하면 소박하다. 부록은 큐브릭 감독이 직접 관여했다고 알려진 예고편과 텍스트로 제공되는 수상 기록뿐이며, 1.66대 1 와이드스크린 영상은 아나모픽이 지원되지 않아 와이드 TV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화질은 제작 시기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영화임을 감안하면 훌륭하다. 강렬한 원색 표현과 준수한 세부 묘사는 대단히 의도적으로 양식적인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을 멋지게 재현한다. 사운드는 오리지널 모노 트랙을 돌비 디지털 5.1로 리믹스한 것인데, 서라운드 효과는 미미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베토벤 등의 클래식 음악을 풍성한 음량으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