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내가 재미있어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좋아해주실 줄은…. 기분은 물론 좋지만, 살짝 당황스럽기도 해요.”
개봉 3주차를 맞이한 지난 주말 관객 400만명선을 돌파하고 500만명을 향해 쾌속순항하고 있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연출한 신예 박광현(36) 감독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흥행성적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참 소박한 소감이다.
그는 지금 이런 결과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몇만명이 들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광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껏 달아오른 내 자신을 차분히 정리하며 부담을 털어버려야만 다음 영화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란다. 그래서 1~2년간은 텔레비전 광고 연출과 영화 공부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웰컴 투 동막골>의 흥행 사실을 잊어버릴 때쯤이 바로 다시 시작할 때가 아닐까 해요.”
박 감독의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그토록 바라던 꿈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화됐을 때 오는 기쁨 뒤의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홍익대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온 그는 광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영화 공부를 하고 시나리오도 썼다. 2001년 장진 감독을 무작정 찾아가 “팬이에요!”라고 외쳤을 때만 해도 진짜 감독이 될 줄은 몰랐다. 어느날 그의 시나리오를 읽은 장 감독이 직접 영화로 만들어보라고 해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2002) 속의 단편 ‘내 나이키’를 만들게 되기 전까지는.
단편을 만든 그해 겨울 장 감독이 대뜸 에이포 용지 뭉치를 던져주며 “해볼 생각 없냐?”고 물은 게 바로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장 감독은 얼마 뒤 이 초고를 가지고 같은 제목의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장 감독의 초고에는 그의 장기인 화려한 언어의 향연이 넘쳐났다. 평소 장 감독의 언어적 유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를 그대로 영화화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면서도 얘기의 밑바닥에 깔린 묵직한 힘에 끌렸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곧 1년6개월 동안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원작을 시나리오로 바꾸면서 가장 중점을 둔 건 바로 판타지성이었어요. 어차피 있을 법한 얘기가 아닌 이상 차라리 동막골을 신비한 가상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거였죠.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 존재쯤 되는 동막골 사람들의 순수성을 통해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를 받는다는 얘기로 만들었는데, 여기엔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이 이 영화를 통해 치유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녹아있어요.”
박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도 적잖게 받았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미래소년 코난>을 비롯한 그의 애니메이션을 무척이나 즐겨 봤어요. 그의 작품은 굉장히 신나고 재미있고 따뜻하면서도 그 안에는 환경 문제, 인류애적 가치, 문명의 폐해 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살아있죠. 하야오 감독의 대다수 작품에서 들을 수 있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무척이나 좋아하고요. 그래서 <웰컴 투 동막골> 음악을 히사이시 조에게 부탁했는데,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그는 요즘 광고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틈틈이 구상하고 있는 다음 영화에 대해 “힘없고 순수한 사람들이 거대 권력에 대항해 승리함으로써 세상의 소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얘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서민들에게 힘을 주는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웰컴 투 동막골>뿐 아니라 그가 이전에 최민식이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위로하는 보험회사 광고를 만든 것도 같은 선상이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영상작업을 하고 싶어요. 심오하고 센 영화를 하는 감독도 많지만, 저 같은 감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