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캐산> 창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 vs 관객이 바라는 것
2005-08-23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영화 <캐산>의 국내 공개시 캐치 프레이즈는 ‘그가 돌아왔다’. 명백히 원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신조인간 캐산>을 기억하는 20~30대 관객의 추억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 실사판은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캐산>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설정만을 일부 인용하여 감독 자신의 해석을 반영한,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영화다. 애니메이션 <신조인간 캐산>이 인류 말살을 획책하는 안드로이드 군단과 인간 사이에서 고독한 싸움을 전개하는 히어로를 다루었다면, 영화 <캐산>은 전쟁 활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류가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주제에 천착한 아트 필름에 가깝다. 뮤직 비디오 연출로 주목 받았던 감독 기리야 가즈아키는 애니메이션을 충실하게 실사화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영화 시작 후 거의 1시간이 지나 캐산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원작을 보았다면 익히 알 법한 캐산의 헬멧이 잠시 화면에 비치는데, 적의 공격을 받아 반 토막이 난 상태다. 마치 ‘당신이 갖고 있는 캐산의 이미지 따위는 부숴버려라!’고 말하는 듯한 이 장면은 원작의 팬들을 분노하게 할 소지조차 갖고 있다. 더욱이 캐산의 동료였던 안드로이드 개 ‘프렌더’는 극중 잠깐 등장하는 노 의사의 애완견으로 스쳐가고, 안드로이드 백조 ‘스와니’는 병으로 쓰러진 주인공 데쓰야의 어머니 미도리가 누운 백조 모양의 침대로 대체된다.

캐산의 헬멧은 써 보지도 못한 채 파괴되어 버린다.

보통 개로 잠시 나오는 프렌더.
스와니는 백조 모양의 침대다.

하지만 동시에 <캐산>은 애니메이션 실사화의 최첨단을 지향하기도 한다. 가장 볼 만한 장면으로 꼽히는 캐산과 로봇 군단의 대결 시퀀스는 애니메이션 구도 그대로인 커트들의 연속이며, 심지어는 로봇이 폭발하기 직전 들리는 ‘삐빙~’ 하는 효과음은 옛날 애니메이션에서 듣던 것과 똑같아 팬들의 추억을 자극할 만하다. 직설적인 대사들과 배우들의 연기 톤도 마치 성우들이 직접 출연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아무래도 <캐산>의 패인이라면 이렇듯 주요 관객들로 상정된 원작의 팬이나 추억을 가진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린 점일 것이다. 또한 ‘공존’ ‘평화’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상업 영화로서는 부담스러운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과연 필요했는가 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그렇지만 선악이 분명하지 않은 설정 때문에 모든 등장인물이 한 순간은 주인공이 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고, 어쨌든 ‘빼어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의 조화, 그리고 그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 순간순간 경탄할 만한 공감각적 체험을 이끌어내곤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한 미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원작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며 비난하는 관객만큼, ‘아름다운 이미지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라며 찬성하는 관객도 틀림없이 있을 터.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요소들이 서로 얽히면서 이 영화를 묘한 불균질 혼합물로 만드는데, 확실한 건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점이다. <캐산>은 한 번으로 다시는 되돌아보지 않을 영화인 동시에, 몇 번이고 다시 볼 만한 영화다.

어쨌든, DVD는 충실하다 / 음성해설과 메이킹 다큐는 놓치지 말자

<캐산> DVD는 영화 한 편 치고는 많은 분량인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영화 본편과 음성해설, 두 번째 디스크는 디자인 갤러리와 삭제 장면, 인터뷰, 예고편 등의 데이터, 세 번째 디스크는 상영시간 2시간 10분으로 길이만으로는 거의 본편에 맞먹는 메이킹 다큐멘터리와 스틸 갤러리가 수록되었다.

2.35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으로 제공되는 본편의 영상은 HD, 8mm 등 다양한 포맷으로 촬영된 데다가 의도적인 색보정을 거쳤기 때문에 장면 별로 편차가 큰 편이다. 전쟁 장면이나 데쓰야와 바라신의 대결 시퀀스 등은 흑백으로 입자가 지글거릴 정도의 거친 질감이며 회상 장면에서는 가정용 홈 무비를 보는 것 같은 흐릿한 화면이 이어진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면들은 거의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되어 CG 배경이 덧입혀져 있는데,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며 일부 어두운 장면에서는 사물의 식별이 힘들 정도로 화면 톤이 조정되어 있다. 창작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영상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HD 영화 치고는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화질이다.

이에 비해 사운드는 명쾌한데 대사 전달도 잘 되고, 액션 장면에서의 음 분리도도 양호하다. 폭발 장면이나 무수한 로봇들이 등장할 때의 육중한 걸음 소리 등은 중량감 있는 저음으로 그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이와시로 타로가 작곡한 멋진 스코어를 듣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에 만족하든 그렇지 못하든 꼭 체크할 만한 부록은 본편과 함께 듣는 음성해설과 세 번째 디스크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다. 음성해설은 감독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극중에서 미처 설명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각 장면이나 의상, 설정 등의 의도 역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된다.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기획 단계부터 완성 후 개봉 첫 날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거의 날짜 별로 담고 있는데,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간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직접 촬영감독을 맡기도 한 기리야 감독이 무거운 HD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 첫 시사회가 끝난 뒤 텅 빈 극장에서 눈물을 삼키는 뒷모습은 무척 감동적이다.

<캐산>은 유명한 원작의 후광과 감독의 강한 개성이 정면충돌한 작품으로, 찬반양론이 확실하게 나뉠 만하다. 하지만 넘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가 응축된 DVD를 볼 만한 관객들이라면 역시 이 영화에 감동을 받았거나, 어떤 영화인지 확인하고 싶은 쪽일 것이다. 반대파라면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2시간을 넘는다는 대목에서 아마 다시금 질려버릴 지도 모른다.

기리야 감독은 촬영감독을 겸했다.
캐산 의상의 원형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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