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의 나의 연인] <연애의 목적> 강혜정
2005-08-25
강혜정(씨네21 자료사진)

살다보니 어찌 소망하던 영화일을 하고 있지만, 기실 난 영화보다는 음악에 빠져 청춘을 보냈다. 그래서 최초의 나의 연상의 연인(배우라기 보다는 가수인) 올리비아 뉴튼 존이 출연한 영화 <그리스>를 보기 위해 중 3 겨울, 스카라 극장 앞에서 하염없이 추위에 떨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하다. 목소리로만 듣던 올리비안 뉴튼 존을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적이라 할 만큼 즐거운 체험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등장한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는 내 영혼마저 앗아갈 정도의 충격을 던지며 올리비아 뉴튼 존을 깨끗이 잊게 만들었다.

데뷔 당시의 그 청순한 얼굴과 다소 통통한 몸짓은 각종 영화잡지를 사 모으게 만들었고 내 책상이며 노트, 연습장 표지를 온통 소피의 사진으로 장식케 했다. 단언컨대 소피 마르소, 피비 캣츠, 브룩 실즈 등 당시 청춘스타 3인방은 온통 내 꿈속을 넘나들며 내 외로운 가슴을 위로하던 플라토닉한 연인이었다. 반면 동네극장에서 감상하던 에로영화의 주인공들은 절제되었던 내 리비도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에로스의 연인들 이었다.

동네극장을 전전하며 에로스의 연인을 찾던 나는 어느 날 이른바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인 장미희씨의 지적관능미에 꽂히게 되었다. 그 영화는 바로 <깊고 푸른 밤>이었다. 대낮에 수업을 땡땡이치고 본 영화라 밖으로 나왔을 때 당연히 어두워야 어울릴 바깥은 환했고 그 밝음은 내 머리속을 정말 하얗게 만들었다. 내 나이 21살에 당시 29살의 장미희씨의 재발견으로 플라토닉과 에로스로 구별되던 연인들은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 둘이 합쳐진 이상향의 연인으로 그녀가 자리잡았다. 잠시 세속의 유혹에 홀려 킴 베이싱어, 다이안 레인에 한눈 팔기도 했지만 장미희씨는 세월의 풍화가 더께처럼 굳어진 친근함과 더불어 여지껏 결혼하지 않은 친절한 연인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내 청춘도 흐르면서 나는 이즈음 20년간 사모한 친절한 연인 장미희씨를 배반하고 새로운 젊은 연인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있다. <올드 보이>에서 처음 본 강혜정씨는 극단적인 순결함과 도발적인 성숙함으로 내 눈길을 끌었다. <남극일기>에서 잠깐 카메오로 등장한 그녀는 <연애의 목적>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애의 목적>에서 그녀를 보고 난 느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회환의 감정이었다.

“난 이제 정말로 저런 사랑할 나이가 지났구나….” 그녀는 내 젊은 날 있었던, 혹은 있음직한 현실적 애인의 실제적 아이콘이 된 것이다.

김태성 쇼박스 부장

젊은 영혼들 사이의 그 복잡하고도 아기자기한 사랑, 아픔 혹은 미묘한 연애의 감정이 그녀로 인해 북돋아 진 것이다. 요즘 <웰컴 투 동막골>에서 그녀는 순수 그 자체로 다시 회귀했다. 도무지 실제 나이도 짐작이 안 되고 온갖 다채로운 색색의 이미지가 담겨진 그녀는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실 업무관계로 강혜정씨와 몇 차례 만나 안면이 있다. 똘똘하고 당찬 스크린 밖의 그녀는 여느 20대 처녀와 다를 바 없다. 내심 얼마나 다행이던지…. 떡볶이라도 한 접시 사주고픈 여동생 같았달까? 화면 속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면야, 어디 가슴 설레어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만나는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청춘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연인이다. 언제 내가 또 그녀를 배반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김태성/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부장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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