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선 지금 루이스 브뉘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6일 개막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이만희 회고전이 열린다. 브뉘엘은 1983년 83살의 나이에, 이만희는 30년 전인 1975년 45살의 나이에 죽었다. 이만희의 걸작 <귀로>는 1967년에 만들어졌고, 그 해에 브뉘엘은 <세브린느>를 만들었다. 두 감독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나 같은 때 만들어진 두 영화는 자꾸 엇갈리며 머릿속을 맴돈다.
은밀하게…노골적으로…당대 규범에 침뱉다.
브뉘엘은 스페인, 미국, 멕시코, 프랑스를 떠돌며 30여편의 전위적 영화를 만들었고 세계영화사에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을 새겼다. 이만희는 평생 한국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가 만든 50여편의 영화는 당대 한국 대중영화의 정점이었지만 젊은 한국 관객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 사이트인 IMDB.com에는 젊은 한국 감독의 이름이 많이 담겨 있지만 이만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임권택을 제외하면 한국 영화는 1990년대에 새로 시작한 것처럼 말해진다. 젊은 감독들은 자신의 미학적 혈연을 유럽 모더니즘과 홍콩 액션과 일본 호러와 미국 필름누아르에서 찾는다. 옛 한국 영화는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이거나 ‘저개발의 기억’일 뿐이며, 그 영화들이 드물게 보여질 때에도 그 시대로선 괜찮은 영화라며 한 수 접고 봐준다. 한국 영화는 새마을운동이 초가집을 허물듯, 혹은 많은 대기업들이 한글 이름을 없애고 영어 약자를 택하듯, 자신에게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바삐 세계영화의 연대기에 편입되려 한다.
<귀로>는 바쁜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는 영화다. <귀로>와 <세브린느>는 제작연도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바람난 유부녀가 주인공이며, 그 여자가 바람피우다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이 공통점들은 그러나 두 영화의 차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다. <귀로>는 정교한 멜로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세브린느>는 술에 쩔고 귀가 멀어가는 67살의 노인이 된 브뉘엘의 철저한 반규범적 전위 영화다. 그럼에도 두 영화가 서로 교차하며 떠오르는 이유는 두 감독이 자신의 자리에서 근본적인 방식으로 시대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브린느>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탈락됐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귀부인이 창녀가 된다는 설정도 마뜩치 않았던 데다, 불쾌한 사도 마조히즘적 표현이 많았던 까닭이다. 이 영화는 한 숏 안에서도 프레임의 안정성을 용납지 않는, 거의 강박적으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모순과 혼란의 영화다. 혁명의 기운은 넘쳤으나 합리주의의 강박을 벗지 못하던 1960년대 후반의 유럽에서, <세브린느>는 모든 규범에 똥 세례를 퍼붓는 영화였다.
<귀로>는 엄격하게 통제된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는 억압의 상태를 놀라울 만큼 근본적인 수준에서 제시한다. 여인의 남편은 6.25 참전 장교이며 불구의 남성인데, 그는 종종 군가를 틀어놓고 군복을 입는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군가와 군복이 이만큼 불길하며 억압적인 것으로 묘사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여인은 유복하나 숨 막히는 집을 나와 서울 거리에서 젊은 남성을 만난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남자와 떠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는다. 군인-남성-가부장 동맹으로 지탱되는 1960년대 한국사회의 무기력과 억압적 질서를 이처럼 맹렬하게 비난하는 영화가 검열을 통과한 이유는 오직 이 영화의 세련된 수사법 때문일 것이다.
<세브린느>는 내면화된 규범과 노골적으로 싸우고 <귀로>는 외화된 규범과 은밀하게 싸운다. 이 싸움을 두 영화 모두 육체적인 것에 귀 기울임으로써 시작한다. 두 감독은 자기의 방식으로 당대와 싸우며 당대의 규범에 침 뱉는다. 이만희는 순응과 애상의 멜로드라마라는 대중적 외피 안에 격렬한 저항과 분노의 언어를 심어놓았다. <귀로>는 시대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진 영화였다. <세브린느>가 이 땅에서 이야기될 가치가 있다면 <귀로>도 다시 말해져야 한다. 오늘의 젊은 한국영화는 대부분 <귀로>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계로 9월과 10월 두달 동안 기고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