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외딴 섬에서 거대한 공룡과 마주친다면, 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소리 질러 그의 이름을 부를지도 모른다. 곤경에 처한 올리브가 뽀빠이를 찾듯이. 막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무조건 뛰어”라고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 전문가이자 해결사인 그는 존재만으로도 듬직하다. 공룡 전문가 샘 닐(54)의 8년 만의 귀환이 반가운 것은 그런 이유다.
쥬라기 공원에서 생환한 샘 닐이 이번엔 공룡의 또다른 서식처인 이슬라 소르나 섬의 부름을 받았다. 3편에서는 연구비가 궁해 사이비 재벌 부부의 여행가이드로 나섰다가, 더 막강해진 공룡들로부터 목숨을 건 탈주를 감행하는데, 전편보다 더 삐딱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화한 그의 모습이 웬일인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간의 가장 큰 변화는 알랜 그랜트 박사를 맡은 배우(나)의 연기력이 한결 좋아졌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에 주눅들어 무엇을 연기하는지조자 몰랐다는 1편 시절보다 사뭇 두터워진 자신감. 샘 닐이 이런 자의식과 자존심을 갖기까지는 무려 24년이 걸렸다.
그간 샘 닐은 전세계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쥬라기 공원>을 비롯, 대형 액션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전문가 캐릭터 ‘전문 배우’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해왔다. 출세작 <죽음의 항해>에서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사이코 살인마를 따돌리는 해군이었고, <붉은 10월>에서는 망명을 원하는 러시아 함대의 2인자였고, <매드니스>에서는 실종된 호러 소설가를 찾아나서는 보험 조사원이었다. 샘 닐은 언제나 위기상황에 빠진 가련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이고 영웅이긴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나 멜 깁슨으로 대표되는 ‘양아치 계열’ 영웅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쌓은 전문지식을 무기로 정면 돌파해나가는 모범생의 이미지다. 피로와 불만에 절어 있는 얼굴, 진지하고 보수적인 이미지, ‘평범함’(everyman quality)의 미덕을 갖춘 영웅. 액션이나 호러에서 닦은 그런 이미지와 맞물려, 로맨틱한 영화들도 그의 몫을 준비했다. <피아노>나 <호스 위스퍼러>에서처럼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안쓰런 사랑의 패배자. 관객으로서 그런 샘 닐을 때로 의지하고 때로 연민하면서 동일시하지 않기란 힘들다.
샘 닐은 유난히 많은 나라를 거치며 개인적으로 또 영화적으로 성장했다. 뉴질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는 북아일랜드에서 그를 낳았다. 뉴질랜드로 이민가 성장기를 보낸 샘 닐은 셰익스피어 연극에 감명받아 영문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연기보다 다큐멘터리 연출로 먼저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미국에 개봉된 최초의 뉴질랜드영화 <적색 영웅>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호주영화계와 연이 닿았고 배우 초년병 시절을 호주에서 보냈다. <오멘3-심판의 날> 등의 미국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할리우드의 본격적인 러브콜을 받은 건 니콜 키드먼과 함께 한 호주영화 <죽음의 항해> 이후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샘 닐은 80년대 중반 영국의 TV시리즈 <라일리: 최고의 스파이>로 스타덤에 올랐고, 로저 무어가 은퇴한 뒤 한동안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샘 닐이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며 느끼하게 웃어보이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말이다.
이처럼 샘 닐은 뉴질랜드, 호주, 영국, 미국을 오가며 60여편의 영화를 찍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뉴질랜드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지만,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뉴질랜드에서 자랐고, 호주에서 살고 있다. 난 세계 시민의 한 사람이고 세계 어디서든 일한다.” ‘세계 시민’ 샘 닐은 94년에는 초기 무대와 이력으로 돌아와, BFI가 영화탄생 100년 기념으로 제작한 세계 각국 영화사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뉴질랜드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현재 내전 발발로 동물원에 갇힌 병사이야기 <주키퍼>와 선량한 경찰관을 타락시키는 범죄자이야기 <프레임드>에 이어 우주 탄생의 신비에 관한 BBC 다큐멘터리에도 힘을 보탤 예정. 국적은 물론 영화의 덩치와 장르도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앞으로도 경쾌한 갈지자를 계속 그려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