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말 많고 탈 많았지만 이제는 그냥 하나 보다 하게 되는 SBS <루루공주>에 관한 작은 소식 하나. 이 드라마에는 11회부터 2인조 그룹 M TO M의 노래와, 그룹 슈가 출신의 황정음이 연기자로 새로 투입된다. 이들은 <루루공주>의 제작사 포이보스의 소속 연예인들이다. 드라마 제작사가 OST도 만들고, 소속 회사 배우들을 캐스팅까지 한다. 당연히 데리고 있는 연기자 주연으로 캐스팅해서 수익을 극대화 할 수도 있고, 드라마가 안 된다 싶으면 소속 신인들을 출연시켜 배우 홍보라도 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드라마 자체를 한 배우의 이미지 가꾸는 데만 써먹을 수도 있다. 물론 시청자들의 짜증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무슨 상관. 제작사는 그래도 돈 번다. 신인은 드라마 출연으로 얼굴을 알릴 것이고, 소속 가수의 노래는 컬러링으로 팔릴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겐 '한류'가 있다.
스타가 모든 것을 결정할까?
결론은, 스타다. 스타가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없으면 <대장금>의 이병훈 PD마저도 오지호 정도의 배우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건 누가 잘못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개별 사안만 보면 스타가 너무 했다 싶을 때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문제는 어느 쪽이 소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은 회당 1억원의 출연료를 받지만, 그건 배용준이 요구했다기 보다는 배용준을 통해 일본수출을 노리는 제작사가 제시한 조건이었다.
한국만의 독특한 제작사 - 스타 사이의 관계로 인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연예인을 하나의 컨텐츠로 보면 연예인은 매우 많은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컨텐츠다.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 성공하면 자기 관리 여부에 따라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반대로 제작사와 스탭들이 한 작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와 현빈은 작품의 성공 이후 최소한 몇 작품을 더 찍을 수 있고, 그 밖에도 CF나 화보집 등 여러 부가 상품을 통해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작품 자체는 다르다. 방송사의 기대 수익은 광고료와 DVD 판매 수익, 다시 보기가 전부일 것이다. 그나마 요즘에서야 해외 수출이 포함된 정도다. 그리고 이중 광고료를 제외한 수익은 아직 광고료만큼 성장하진 않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몇몇 작품에 한해서다. 또한 수익을 올려도 제작사가 한 작품이 끝나는 대로 또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야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회사를 운영하려면 꾸준한 수입이 필요하고, 꾸준한 수입을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이 필요하다. 반면 스타는 그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다. 당연히 작품을 고르는데 까다로워지고, 요구조건은 올라간다. 외국의 예와 비교할 게 아니다. 한국 시장의 특성이 스타를 그렇게 만든다. 문제는 스타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컨텐츠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비용과 시간, 수익률에 있어 모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 윈프리 쇼>나 <위기의 주부들> 같은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들은 1년에 많아야 24회 내외로 방영 된다. 남은 기간은 재방송을 봐야 한다. 미국 시청자라고 해서 재방송 보는 게 즐거울 리는 없다. 하지만 제작사는 1년에 그 정도만 만들어도 큰 돈을 벌 수 있다. DVD 판매, 해외 수출, 기타 관련 상품과 쇼 등 상품은 무궁무진 하고, 각각의 수익은 엄청나다. 때론 폐지시켰던 프로그램이 DVD 판매가 잘 돼서 그 수익 때문에 부활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즌제를 기본으로 한다. 한 작품이 성공하면 그 때부터 제작사나 출연자 모두 다음 작품을 통해 안정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MBC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끝나자마자 관련 다큐멘터리, 심지어 '삼순이 선발대회'까지 만들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욕먹어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광고료 이외의 수익은 정말 대박나거나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에서만 기대할 수 있고, 게다가 그 컨텐츠는 다시 써먹을 수 없다. 결국 그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광고료를 기대할 수 있는 유사 프로그램의 제작뿐이다. 그 다음에는 다시 허겁지겁 새로운 드라마를 만든다. 50%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를 만들어도 당장 2개월 뒤를 알 수 없는 것이 방송사의 현실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케이블 TV와 인터넷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그러니 점점 히스테릭해진다.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연장방영이고, 낮으면 사정없이 조기종영이다.
부활과 변호사들의 도전
지난 여름의 드라마들은 이런 시장 구조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제작진이 시장 상황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황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했다. 작품의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마니아 드라마라면 마니아 드라마를 만들고, 시즌제가 필요하면 시즌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변화한 시청자들이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팬덤의 형성은 일반화된 현상이고, 현재 드라마 홍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다. 인터넷 언론들은 시시각각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글을 여론화 시키고, 이는 드라마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오프라인 상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인터넷에서는 관심조차 모으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작가-연출자-출연자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방송사야 시청률만 잘나오면 그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름값'으로 먹고 사는 그들은 입장이 전혀 다르다. 그들 입장에선 시청률 이상으로 '이름이 남는 것'이 중요하다. 고현정이 인정옥 작가의 작품 시청률이 높아서 인정옥 작가의 작품에 출연한다고 했을까? 설마 <봄날>에 이어 다음 작품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고현정이 단지 호감만을 가지고 인정옥 작가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엔 설사 시청률이 20%가 나오지 않더라도, 인정옥 작가의 작품이라면 앞으로 자신의 이미지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인정옥 작가에 대한 평가는 인정옥 작가의 마니아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터넷 팬덤은 시간이 갈수록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드라마는 스타 출연자 = 팬덤의 호의적인 반응 = 드라마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이라는 등식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은 스타에 대한 호감과 드라마의 완성도를 정확하게 분리한다. <패션 70s>은 배우들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패션 이야기가 실종된 후반부로 인해 숱한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의 작가와 연출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완성도에 신경 쓴다. 옛날에는 시청률만 오르면 방송사에서 주는 포상휴가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순간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연출자와 작가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워진다. 과거라면 아무 문제없이 드라마 집필했을 임성한 작가는 <왕꽃선녀님> 때부터 방영 전부터 네티즌들의 비난에 시달린다.
평생 방송사에서만 드라마 찍을 게 아니라면 작가와 연출자는 연예인들처럼 자신의 커리어를 가꿀 줄 알아야 하고, 그 키는 네티즌들이 쥐고 있다. 무슨 드라마가 들어가도 일정 시청률이 올라가는 시간대 드라마를 맡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마니아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다시 보기 + DVD + 해외 판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PD나 작가들이 오래갈 수 있다.
<부활>과 <변호사들>의 등장은 이런 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한 드라마는 드라마 시장 전체에서 봤을 때는 여전히 비주류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반전이 있는 드라마가 주목을 모으고, 해외 시리즈 역시 그런 면모가 부각된 작품들이 국내에서 반응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현재 가장 소비가 왕성한 젊은 시청자층이 로맨틱 코미디 못지않게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부활>과 <변호사들>은 그들을 국내 드라마 시장으로 끌어들였고, 그것은 마니아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이는 단지 장르 선택의 문제만이 아니라,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담겨 있는 '뭔가 다른' 완성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각각의 변호사들의 사무실을 분리해놓고, 평온한 바깥과 그 안에서의 긴박한 상황 정리를 대비시킨 로펌을 그려냄으로써 드라마의 사실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높였다. 단지 화면이 예쁘다는 것이 아니라 세트로 작품을 이야기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과거의 방송사용 멜로드라마가 아닌 동서양의 영화들을 마음껏 보고 성장한 현재의 젊은 연출자들이 '연출'을 '촬영'의 개념과 분리시키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예다.
또 <부활>은 어떤가. 대본의 구조라는 측면만 언급한다면, <부활>은 '완벽한' 드라마다. 적어도 필자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이래 장편 드라마 중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모든 것이 '완결'되는 작품은 없었다. 이는 이 드라마가 단지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는 스릴러이기 때문은 아니다. <부활>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시청자에게 보여주면서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살인사건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히면서 드라마의 중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베일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각자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의 심리로 옮겨진다. 그래서 <부활>은 시작부터 모든 것을 알려주지만, 시청자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시청자들은 확고한 추리의 결과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람을 보며 끊임없이 조마조마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권선징악이나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가 아니라, 죄와 속죄, 그리고 구원과 부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종교적인 물음이다.
단지 똑똑한 스릴러를 뛰어넘어 거기에 인간의 인생을 담아 그것들에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한 <부활>의 완성도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범위를 확장해도 쉽게 찾기 어렵다. <부활>은 원래의 설정정도로는 24부까지 끌고 가기 어려운 드라마의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이용, 드라마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방대한 스토리를 전개했고, 이는 드라마 구성의 새로운 모델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그 완벽함이 오히려 상업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부활> 같은 드라마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에 열광한 시청자들이 그대로 DVD를 사야하고, 그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 <부활>이 시즌제 드라마였다면 지금의 시청자들을 기반으로 다음 시즌에는 더 큰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DVD 시장은 협소하고(그래도 '다모'같은 마니아 드라마는 10만 세트를 팔았지만), <변호사들>처럼 PD 스스로가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어도 어찌 될지 속단할 수 없다. 만약 시즌제가 가능했다면 <부활>의 구성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24부작의 한계 내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선택했고, 그래서 완벽할 수 있었지만 그 뒷이야기를 만들기 어렵게 됐다.
루루공주는 왜 비데 공주가 되었나
<안녕, 프란체스카>의 선택은 그래서 주목할만하다. 노도철 PD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 시트콤은 제작진 스스로가 수익구조에 대해 고민했다. 마니아 드라마는 다양한 수요를 창출하고, <안녕, 프란체스카>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췄다. 에피소드별로 이어지는 시트콤 특유의 구성과 독특한 캐릭터, 패러디와 반전, 그리고 깜짝 놀랄 카메오 등의 결합은 이 시트콤에 대중문화 코드를 즐기는 어떤 시청자층이 다가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시청률과 별개로 DVD와 OST에 대한 높은 구매와, 시즌제 시트콤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쉴 새 없이 시즌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완벽한 시즌제 드라마라고는 할 수 없고, 그 결과도 미지수지만 <안녕, 프란체스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물론, 가장 큰 성공은 이런 변화의 기류를 대중적인 틀 안에 녹여낸 <내 이름은 김삼순>이 거두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모두가 익숙해하는 4각관계의 틀 안에 새로운 시도들을 더하여 새로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내 이름은 김삼순>이 현실의 '연애론'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 제시한 현실적인 연애심리의 반영을, <내 이름은 김삼순>은 보다 대중적인 방법으로 소화했다. 물론 여전히 시작은 재벌 2세의 등장에서 비롯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은 현실적인 연애담을 다루는 드라마가 점점 '대세'를 이루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루루공주>가 왜 실패했는가로 이어진다(자꾸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김정은이라는 카드를 내세우고도 <장밋빛 인생>의 첫 회부터 뒤처지게 된 이 드라마의 실패는 무엇보다도 네티즌을 적으로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근본적인 원인은 재벌가에 대한 판타지와 현실성 어느 쪽도 채우지 못한 드라마의 끔찍한 완성도에 있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네티즌의 여론을 무시한 홍보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홍보 전략은 말 그대로 '부담의 바다'였다. 드라마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김정은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시청률이 기대된다는 식의 기사가 끊임없이 나왔다. 시청자들은 이미 드라마의 질을 민감하게 감별하는데, 제작사는 '양'으로 승부하는 홍보로 바람몰이를 한다. 특히 <루루공주>를 <내 이름은 김삼순>의 뒤를 잇는 드라마라는 식으로 <루루공주>를 홍보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홍보는 이젠 도움이 되기보다는 인기 드라마의 팬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루루공주> 첫 회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에서 온갖 비판이 쏟아진 건 그 때문이다. 가뜩이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드라마를 보는데, 드라마 완성도까지 최악이니 네티즌들이 그냥 지나갈 리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여론화 되면서 초반 기세를 꺾어놓았다.
드라마는 점점 더 스타 없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또한 스타만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간다. 물론 스타파워는 막강하다. 하지만 스타 못지않게 연출자와 작가가 힘을 가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걸 얼마나 앞당기느냐는 작품 각각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어떤 수익구조를 만드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최소한 시청자들이 불법 다운로드 대신 DVD 구입만 해줘도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모두 '웰컴 투 동막골'을 본다
이는 영화계가 드라마보단 나은 상황에서 시장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강우석 같은 거물이 욕심 많은 스타들 때문에 영화 만들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건 반쯤은 거짓말이다. 올해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은 <댄서의 순정>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스타 파워에 기대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웰컴 투 동막골>이 보여주듯이 기획과 홍보, 작품의 완성도가 맞아 떨어지면 톱스타가 없어도 흥행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의 상황,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관점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 시장은 국내 대중문화 시장 중 가장 큰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재편 된 영화산업은 더 이상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단지 영화 한 편 본다는 의미이상을 부여했고, 그래서 관객들은 여전히 극장에 돈을 낸다. 음악은 불법 복제 때문에, 드라마는 원래 '공짜'인 구조 때문에 제작사가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기 힘들지만, 500만 관객이 '현실'인 영화는 보다 많은 자본을 투자하며 스타에 기대지 않을 수 있고, 그래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대중은 드라마와 다른 방법으로 영화에 접근한다. 영화는 예전부터 한국에서 가장 비평이 활발한 장르였고, 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돈'을 내는 관객들은 영화를 봐야할 나름의 이유를 분명하게 정의한다. 그래서 영화는 단지 스타가 문제가 아니라,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는 '기대감'을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는 어떤 스타가 나온다는 이유로 선심 쓰듯 채널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스타를 중심으로, 그 스타를 어떻게 작품 속에서 최적화 시킬 수 있는가 하는 '조합'이 매우 중요하다. 관객들은 이미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두 시간 남짓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드라마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스타 파워가 강력한 영화라도 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이영애를 통해 근사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박찬욱 감독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최고들이 모였으니 그 작품이 얼마나 볼만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올드보이>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친절한 금자씨>를 봐야할 이유가 됐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친절한 금자씨>의 불친절함에 의해 깨지는 순간, 관객들은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그만큼 관객은 박찬욱 감독과 이영애라는 이름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반대로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 웃음, 감동, 그리고 온 가족 관람 가능 영화라는 여러 코드들을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이미지안에서 홍보함으로써(이 작품이 정말 웰메이드인가 아닌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분명한 홍보 포인트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매우 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사회 중심의 홍보(시사회 관객만 20만 명에 달하는)를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관객들은 <웰컴 투 동막골>을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진 않아도,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데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웰컴 투 동막골>은 무난한 상업영화가 '웰 메이드'와 '감동'의 코드를 끌어안으면 오히려 '전 연령의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형사>와 <외출>에 대한 기대감도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하지원과 강동원이 볼거리 하나는 확실한 이명세 감독의 대작에 출연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또 <외출>에서 배용준을 뒷받침하는 것은 기존의 멜로와는 다른 멜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허진호 감독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 작품의 포인트가 <외출>이라는 작품 자체에 배용준이 얼마나 녹아들었냐가 아니라 '한류'로부터 시작되는 배용준의 엄청난 스타파워에 집중되는 것은 오히려 이 영화의 불안요소다. 그건 겉은 화려하지만, 오히려 영화에 대한 불신을 던져줄 수도 있다. 그건 국내 관객들에게 혹시 영화가 기대만큼의 완성도를 가지지 못한 것 아닌가에 대한 우려를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배용준이 출연한다'가 아니라, '영화가 볼만하다'이다.
이는 <우주전쟁>의 기대를 밑도는 성적에서도 증명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 톰 크루즈라는 라인업은 관객들에게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볼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관객의 대부분은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과 상관없이 이 영화에 당황했다. 반면 '사상 최대의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홍보한 <아일랜드>는 인간 복제의 이슈와 함께 미국과 달리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관객들이 원한 건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인 이들이 화끈하게 사랑하고 때려 부수는 것이었고, 영화는 그 기대를 그대로 충족시켰다. 한국 영화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 역시 관객에게 기대감을 줘야 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웰메이드'와 연결되어 있다면,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다른 무엇이다. 적어도 영화계에 한정한다면, 문제는 스타가 아니라 그 스타를 얼마나 관객이 원하는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미 관객들은 자기 스스로 영화의 가상 캐스팅(감독까지 포함한) 라인업을 짜고 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그들을 이겨야 한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데려 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지고 뭘 찍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리메이크, 트롯, 섹시
음악계의 끝없는 침체의 원인 중 하나는 이런 상상력의 부재도 한 몫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가수들 중 앨범마다 확실한 자기 컨셉과 전작과 다른 자기 음악을 자기 이미지와 결합해 보여주는 가수가 얼마나 될까. 1990년대는 가요 프로그램에 복귀하는 가수들을 볼 때마다 기대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가수들이 가장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라 'X맨'같은 프로그램 출연해서 커플을 만들 때다. 요즘 새 앨범을 낼 때 음악의 컨셉으로 승부하는 건 'Girls on top'의 보아처럼 무대 위에서 강한 스타성을 발휘할 수 있는 몇몇에 국한 된다. 나머지는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기 쉽지 않다. 누가 요즘 같은 세상에 위험한 이미지 변신을 하겠으며,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제시하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음악이 점점 'BGM'화 되어 간다. 새롭지만 위험할 수 있는 음악 대신, 누구나 부담 없이 PC에 켜놓고 들을 수 있는 음악, 컬러링에 적합한 음악들이 돈을 번다. 그 음악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예전엔 댄스 음악으로 획일화 된다는 비판을 들었던 가요계가 이젠 시장이 훨씬 줄어든 상황에서 R&B 계열의 발라드 음악들로 획일화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음악시장의 축소로 이어진다. BGM같은 음악들은 돈은 벌 수 있어도 트랜드를 형성하거나, 음악 팬 이외의 대중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얻긴 힘들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말 그대로 시장을 휩쓰는 싱글이 존재하지 않았다. 쿨의 해체와 함께 더 이상의 히트 시즌 송마저 없었다. 그러다보니 기획사는 더욱 안전지향을 노린다. 그나마 SM, YG, JYP처럼 나름대로의 방향과 자본, 스타를 모두 가지고 있는 회사는 나름의 시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의 회사들은 언제나 안전지향적으로 흘러간다. 리메이크 음반들이 쏟아지고, 섹시함으로 승부하는 여성 그룹들이 나오며, 트롯 계열의 가수들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수요층이 있고, 가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메이크 음반은 가수들이 안전하게 앨범을 더 낼 수 있는 방법이고(심지어 대선배 조용필의 음악을 알리지 않고 사용하더라도), 섹시 컨셉의 여가수들은 곡은 성공하지 않아도 '연예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다. 아예 데뷔와 함께 누드 사진을 찍어 수익을 확보하고, 스포츠 신문을 통한 홍보도 가능하다.
또 트롯 시장은 장윤정 이후 보다 싼 제작비로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기대가 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내는 앨범들은 묻히기 쉽지만, 트롯 시장은 기존의 트롯 가수들보다 조금 더 제작비를 들여 공중파 TV에도 출연하면 더 많은 행사와 더 많은 나이트클럽 공연이 기다린다. 물론 제 2의 장윤정이 나오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돈이 더 많이 드는 제작을 하느니 차라리 이런 식의 접근이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재은처럼 이름이 알려진 탤런트를 가수로 데뷔시키면 안정성은 더욱 올라간다. 꽤 유명한 탤런트이기에 홍보에 드는 돈은 줄어들고, 반대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은 더욱 늘어난다.
음악은 영세업일까?
이러다보니 아예 '상대가 안 되는' 신인들이 쏟아지고, 차트는 최근 앨범을 낸 기존의 인기 가수들이 재빨리 1위를 차지한 다음 그 다음 가수에게 넘겨주는 일들이 반복 된다. 그나마 지난 여름 나름대로 공격적인 홍보를 한 것이 SS501과 아이비 정도였지만, 이들 역시 철저한 안정을 추구했다. SS501의 경우 동방신기와 맞물려 과거 HOT-젝스키스를 연상시키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싱글의 인기가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기획사 자체가 노래나 그룹의 이미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대신 무난하게 이름을 알리는 것에 집중했다. 비록 댄스곡을 내놓긴 했지만 보컬그룹이라는 것이 강조된 그룹의 이미지는 다른 보컬 그룹의 이미지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되 위험하지도 않았고, 노래보다는 'X맨'같은 버라이어티 쇼를 통한 멤버들의 활동은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하진 못하지만 멤버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의 젝스키스처럼 될 수 없다면, 요즘에는 그게 최선이다.
아이비도 마찬가지다. 아이비는 어지간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만 가도 관련 기사 한두 개쯤은 볼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인 홍보를 진행했다. 또한 앨범 프로듀싱을 박진영에게 맡기고, 춤은 외국의 유명 안무가를 섭외함으로써 시선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획사가 아이비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선택한 것은 철저한 '비 워너비' 전략이었다. 기사마다 '여자 비'라는 타이틀이 따라붙고, 비에게 춤 교습을 받는 동영상을 공개하며(실제로 비가 나오진 않는다), 비의 일본 공연에 게스트로 나선다. 물론 비의 팬들이나, 음악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대신 아이비는 최대한의 위험을 줄이고 안전하게 많은 기사를 낼 수 있고, 어쨌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을 것이다. 홍보 전략 자체는 촌스럽다고 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나름대로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기존의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가요계에는 스타가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가수라기보다는 종합 엔터테이너가 되어 간다. 그들의 주 활동무대는 'X맨'이 되어가고, 연기는 옵션이 아닌 필수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요계의 스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그런 것들일 뿐이다. 물론 음악만으로 승부해 성공을 거두는 스타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앞서 언급한 듣기 좋은 BGM같은 음악을 부를 수 있는 가수들에 국한 된 것이고, 다른 장르의 경우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직도 음반 차트의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김종국의 '제자리걸음'의 인기는 이 두 가지 경우가 겹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몇 년간 국내 가요계의 주류가 된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 형식을 띄고 있고, 더불어 그는 'X맨'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다져나갔다. 여전히 음악을 구매하는 소비층의 취향에 어울리는 음악에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캐릭터가 더해지니 다른 가수들보다 빠르고 길게 반응이 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국의 노래는 여전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옛날에는 10~20대의 히트곡은 비록 그 이외의 세대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쨌건 그 존재는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음악을 들을 기회는 더 많아졌어도 요즘 나온 음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된다. 그래서 음반 기획사들은 어느덧 매니지먼트 전문 회사가 되고, 드라마 제작을 원한다. <세잎클로버>나 <루루공주>를 제작하거나, 말 같지도 않은 음악을 내놓으며 행사 수입이나 올리려는 '영세업자'가 되거나 음악계가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카우치가 '음악캠프'에서 일으킨 사건이 지지를 못 받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들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들의 행동이 대다수의 음악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삐삐롱 스타킹이 카메라에 침을 뱉었을 때는 음악 산업이 호황이었고, 그만큼 상업성 위주의 아이돌 댄스 음악들이 립싱크와 표절 문제로 그 대중성과 별개로 음악계의 '공공의 적'처럼 인식되었다. 삐삐롱 스타킹의 행동은 록 밴드에게 마저 립싱크를 권하던 그 당시 대중 음악계에 대한 야유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카우치가 옷을 벗은 지금은, 메이저 기획사의 가수들마저 활동할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런데 인디 밴드 소개하는 무대에서 그런 행동을 했으니, 음악팬들이 그걸 지지하기 힘들다. 옹호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옹호해줄 명분이 희박했던 것이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카우치에 관련된 사건은 수용자의 달라진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사건과 맞물려 '음악캠프'는 폐지가 결정되고, 이명박 시장은 퇴폐 '공연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까지 했지만, 그 이명박 시장은 다시 인디 밴드 공연을 관람하겠다며 태도를 바꾸었고, 카우치 사건이 터지자마자 검열까지 운운하던 언론은 얼마 안가 전체 인디씬에 대한 매도는 금물이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그건 그들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론 자체가 '인디씬 죽어라'가 아니라 '고생하는 음악인들 더 힘들게 하면 안 된다'로 흘렀기 때문이다. '음악캠프'와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대한 여론몰이식 폐지 및 경고조치는 안타깝지만, 그래도 '언론'과는 다른 '여론'이 생성되고, 그것이 다시 언론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그리고 이런 몇 가지 변화들은 연예계 전체의 변화에 대한 전조일지도 모른다. 제작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대중은 연예계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며, 과거 이상으로 적극적인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스타에만 의존한 과거의 전통적인 제작 - 프로모션 - 홍보방식이 과연 얼마나 효과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뭐, 그래도 '한류'가 먹여 살릴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그 나라 사람이라고 스타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작품 좋아할까?
※이 기사는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님이 운영중인 트리플크라운에서 제공합니다. 기사는 DVD토픽과 트리플 크라운 두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