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선 누구나 슬퍼하고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대개는 슬픔을 추스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맞닥뜨리면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밥도 먹고 웃고 떠들기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도 세상살이의 한 부분이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장의사, 말만 들어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섬뜩해서 오싹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데 장의사에겐 죽은 사람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초상을 치르는 일이 ‘일상사’다. “사람은 마지막 떠날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할아버지에게 가업으로 하는 장의사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수긍할 만하다. “장의는 죽은 사람의 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락실 타령을 하는 망나니 같은 손자에게 장의일을 권하고, 여관방에서 목을 매 죽으려던 철구가 낙천장의사를 찾아오면서부터, 할아버지의 투철한 ‘장인정신’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덜거리지만 마지 못하는 재현과 10년 동안 실적이 없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주장하는 철구, 황금슈퍼 주인인 아버지가 입 하나 덜 요량으로 장의사에 일 배우러 보낸 대식에겐 사람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고, 다만 실습과 영업 대상일 뿐이다. <행복한 장의사>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에 대해 멀찌감치 거리을 둔 사람들이 보여주는 뜻밖의 천연덕스러움이 코미디로서 요건을 갖춘 것이다. 주요 인물들은 죽음을 그저 바라보고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할 뿐 끼어들지 않는다.
틈틈이 할아버지의 전수도 받지만 부고는 날아들지 않고 재현, 철구, 대식은 마냥 무료하다. 홍콩영화를 보거나 슈퍼 앞에 우두커니 앉아 아이스크림이나 퍼먹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과부가 자살을 하고 이들은 처음 일을 맡게 된다. 하지만 시체를 본 철구와 재현은 기절하고, 대식은 그 와중에도 죽은 이의 금이빨까지 슬쩍한다. 얼토당토않은 해프닝에 웃다보면 영화는 슬픔을 머금고 있다. 병균을 쫓는다며 소주로 세수를 하던 할아버지까지 소주를 들이켜며 “이 일을 할라문 첫 번째가 빨리 잊어부러야 한다. 안 그러면 시체가 눈앞에 있어 못 살어”하며 속내를 내비친다. 우체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철구는 ‘유관업체’를 모아 독립을 시도하고, 재현은 동네 꼬마 연이, 마음 깊이 연정을 숨겨두었던 꽃집 소화를 차례로 떠나보내면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다.
시골마을의 정취를 흠뻑 담은 야외 장면과 재현과 철구, 대식이 무료함을 달래는 상황의 미디엄숏은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며 강한 인상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장의사를 매개로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코미디를 끌어낸다는 기획은 기발하고 산뜻하다. 하지만 초반에 재치있게 끌고나가던 코미디는 중반 이후 헤메기 시작하며 이야기구조와 코미디전략의 부실을 노출한다. 철구가 세계장의복지협회를 만들어 독립하고 느닷없이 어린 소녀 연이의 죽음을 맞는 대목으로 가면서 영화는 힘이 빠져버린다.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상황에서 끌어내는 골계가 아니라 대사에 의존하는 단발 폭소로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행복한 장의사>는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로 연이은 흥행작을 내놓았던 우노필름의 아홉 번째 작품. 장문일 감독은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출부,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등 조감독으로 연출 수업을 했다.
<행복한 장의사>의 배우들
‘스스로 배우’부터 ‘노익장’까지
임창정에게 <행복한 장의사>는 벌써 다섯 번째 영화. 데뷔작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보기도 힘든 엑스트라급(<남부군>) 조연이었지만 <비트> 이후 <엑스트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 줄곧 주연이다. 본업이 가수인지 배우인지 흐릿해진 셈이다. 아직 스크린을 압도하는 눈부신 연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배역을 소화하고 나름의 매력을 드러낼 줄 아는 요령은 몸에 밴 듯하다. 스스로 배우로 불리고 싶어한다는 김창완도 특유의 어눌한 행동거지에 때론 신경질적인 연기까지 더해 영화의 맛을 진하게 우려낸다. 영화 출연작은 <정글스토리>와 <링>에 불과하지만 <연애의 기초> <추억> <은실이> 등 TV에서는 이미 연기자로 공인받은 지 오래다. 낙천장의사 주인으로 죽은 이들의 천국행 인도자임을 자처하는 장판돌을 연기한 오현경은 일찍이 연극무대에서 관록을 자랑했으며 <TV손자병법> 등으로 안방 시청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오현경은 큰 수술까지 하고 환갑, 진갑을 훨씬 넘겼지만 노익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행복한 장의사>가 낳은 새 인물은 단연 ‘아무 생각 없는’ 황금슈퍼집 아들 대식을 연기한 정은표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메이저’연극 20여편에 출연하면서 잔뼈가 굵었고, 영화는 <진짜 사나이>와 <유령>에 출연했다. <유령>에서 최민수에게 잔인하게 처지당하던 조리장이 바로 정은표다. 게다가 우노필름에서 제작하는 오승욱 감독의 <킬리만자로>에도 출연하기로 돼 있어 ‘뜨고’ 있는 배우로 꼽힌다. 영화에서 봄바람처럼 재현(임창정)의 마음을 흔드는 꽃집 주인 소화를 연기한 최강희 역시 이미 <종이학> <학교> <광끼> 등으로 TV에서는 꽤 알려진 얼굴. 하지만 지난해 영화 <여고괴담> 선풍의 주역이라는 점 때문에 더 큰 기대를 모았다. 당시에는 최세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곰다방의 천방지축 미스 황으로 나온 전이다도 낯선 얼굴은 아니다.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으로 데뷔해 지난해 <거짓말>에서 와이의 학교 친구를 연기하기도 했다. 이 밖에 초보 부부장의사로 박광정이 출연했고, 단역 전문 김선화가 자살한 과부로,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를 만든 구성주 감독이 우체부로 등장해 인상적인 연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