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영화에 비친 북한, 그들은 부드러워졌다
2005-09-0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임인택
공동경비구역 JSA

지난 10년새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 시장에서 북한은 더 이상 위험하거나 모험적인 소재가 아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만약 ‘대박’의 법칙을 세울 수 있다면 그 첫머리에는 ‘남북문제를 소재로 쓸 것’이라는 문장이 올라 와야할 것이다. 최근 <공동경비구역 JSA>(전국 583만명)와 <쉬리>(621만명)의 기록을 깨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4위에 오른 <웰컴 투 동막골>을 포함해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태극기 휘날리며>)부터 6위 가운데 <친구>를 제외한 다섯 작품이 남북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절대악에서 사람냄새 나는 악으로=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는 분단 소재의 ‘상품성’을 처음으로 확인시켰던 흥행작. 당시 물꼬를 트던 남북교류 분위기에 비하면 시대착오적이라 느껴질 만큼 냉전적 시각으로 북한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북한을 탈인격화된 절대악으로 묘사했던 1960~70년대 반공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러나 최민식이 연기했던 간첩 이무영은 남한을 증오하는 ‘적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으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우리편’ 캐릭터보다 인상깊은 매력을 발산한 인물이었다. 북한군복이 남한군의 것보다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반공법에 걸려 이만희 감독이 고초를 당해야 했던 <7인의 여포로>(1965)가 제작됐던 당시라면 이 역시 처벌감이 될만한 금기였을 것이다.

쉬리
간첩 리철진

인간의 얼굴을 회복한 인물들, 여전히 어두운 땅=<간첩 리철진>(1999)은 이데올로기의 중압에서 벗어난 전후세대 감독의 발랄한 상상력이라는 ‘섬유유연제’를 통해 뻣뻣했던 북한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헹궈낸 첫 영화다. 간첩 리철진은 남한에 오자마자 택시강도를 당하는 어리버리한 인물이고, 그가 접선하는 고정 간첩은 임무는 뒷전에 공작금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 소시민으로 묘사된다.

짐승의 탈을 벗기 시작한 북한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와서 온전한 인간의 얼굴을 획득했다. 남한병사 이수혁(이병헌)은 군사분계선을 오가며 친해진 오경필(송강호)에게 “형”이라고 부른다. 남북대립의 가장 첨예한 상징물인 군사분계선은 이들에게 물리적인 금지구역일지언정 더이상 감성적, 이념적 금단의 기재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북한의 인물들이 검은 베일을 벗은 반면 여전히 체제로서의 북한은 냉혹하고 비인격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리철진은 남한과의 거래에서 북한의 잉여물로 남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오경필은 수혁과의 비밀스런 친교가 상사에게 발각되자 자해하며 살 길을 보존한다. 영화 속의 북한 사람은 변했지만 영화 속의 북한은 여전히 변한 사람을 품어줄 만한 유연한 공간이 아니다.

웰컴 투 동막골

더욱 부드러워진 인물, 현실성이 휘발된 공존의 땅=속 깊은 ‘형님’의 얼굴을 한 북한군의 모습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현재 상영중인 <웰컴 투 동막골>로 이어진다. 낙오된 북한군 리수화(정재영)는 변형된 오경필이고 탈영한 남한군 표현철(신하균)은 변형된 이수혁이다. 인간적으로 따지면 리수화는 오경필보다 따뜻해 보이고 표현철은 리수혁보다 이기적이다. 그러나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때 ‘JSA 전우회’ 형님들이 보였던 반발은 이 영화를 두고선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바뀐 것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영화가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바꿔놓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부드럽고 따뜻한 화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막골은 남북 대치가 현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꿈 속의 이상향이다. 전쟁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한 이 곳에서 분단문제의 현실성은 휘발돼 버리고 복장만이 그의 출신을 말해주는 창세기 속의 인간들만이 남는다. 연합군에 맞서기 직전 표현철은 리수하에게 “우리 다른 데서 만났으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뒤집어 음미하면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이유가, 남북한이 현재 이곳이 아니라 ‘다른 데’서 만났기 때문일 수 있다는 영화적 한계로 읽히기도 한다.


북한 바로보기 ‘색안경’ 벗었으나 위험한 시선은 여전

1980년대 중후반 <남북의 창>과 <통일 전망대>로 ‘북한’이 처음 대중적으로 소비된 때부터 ‘레드 콤플렉스’는 또 다른 일그러진 시각들로 분화해왔다. 양상이 바뀔 뿐 북한은 여전히 피상적으로 다뤄지고 남북의 문화적 기호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남한 대중문화가 북한을 소비하는 데에서 보이는 위험한 시선들을 짚어본다.

북한 오리엔탈리즘=리철진(영화 <간첩 리철진> 유오성)은 순박하고, 그래서 웃기다. 최남단 전선에 배치된 오경필 중사(<공동경비구역 JSA> 송강호)도 순수하고 우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정치적 희생물일 뿐, 한 여인만을 사랑하며 이상향을 간절히 염원하는 이중간첩 임병호(<이중간첩> 한석규)도 있다.

‘북쪽 사람 머리의 뿔’도 편견이듯, 북을 어김없이 ‘순수’로 그리는 것도 우리 안의 치우친 미신이다. 북한은 위험하지만 덜 개발되고, 덜 때 묻은 ‘미지의 나라’로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의 힘이다. 이해가 아닌 동정의 대상이나 각종 코미디의 웃음 코드로 쉽게 변주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북한의 일상을 비춘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상영장에선 북쪽 학생들도 ‘땡땡이’를 친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끼며 나오는 웃음보다, 마치 웅변하듯 영어책을 잽싸게 읽어내고 발표하는 이들을 보며 터뜨리는 웃음 소리가 더 크다.

여성의 상품화=이산 가족 상봉, 남북 정상 회담 만큼이나 ‘북한 여성응원단’은 남쪽의 지축을 흔들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남()’을 달궜다. 지난달 세 번째로 인천에 온 ‘응원단’은 ‘청년학생협력단’이란 호칭을 주문했지만, 남쪽 매스컴에 의해 ‘미녀’란 수식이 망령처럼 따라 다녔다.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은 말없이 누운 채 서양의 시선에 몸을 맡기는 수동적 동양을 가정한다”면서 “영국 남성의 시선에 얼어붙는 인도 여성”으로 오리엔탈리즘의 단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남쪽의 남성적 시선에 얼어붙는 수동적 북한, 여성화한 북한’이라고 표현하면 무리일까. 자본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 만나면 타자화한 여성은 상품화하기 십상이다. “북한 문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고 있다”고 전제한 이우영 경남대 교수(북한대학원)는 “관심이 사라질 때 남는 건, 성 하나”라며 우려했다.

추상화, 탈 역사화=최근에는 그냥 “즐거우면 된다”, “예쁘면 된다”는 식으로 북한을 탈역사화하면서 부분 소비하는 신세대적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 정치사회성과 결부된 문화 요소는 무시한다. <웰컴 투 동막골>도 영화의 무대와 거기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을 탈역사화하고 있다. 역사가 사라지고, 이미지나 정서만 남는다. 일부 신세대들은 ‘조명애’나 북한의 ‘미녀’에 대한 해석 자체를 뜨악해한다.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정서만 있다.

이우영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 “지난해 초중생 10명이 북한 유적지 정일봉을 봤는데, ‘아 이건 여기 유적지구나’한다. 선입견이나 거부감이 없다. 그냥 받아들인다. 차라리 이런 신세대들에게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교육을 통해 다양성의 가치가 확산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쿨’한 시선이 ‘북한 깊게 들여다 보기’를 저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는 건 또다른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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