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5.1 채널로 돌아온 <카우보이 비밥>, 그 상세한 분석
2005-09-16
글 : 강명석 (기획위원)
Cowboy Bebop - Cheers for lonely heart

“아저씨와 영감님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세계 -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의 중년 남성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이기도 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각본을 맡은 노부모토 케이코의 이 말은, <카우보이 비밥>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카우보이 비밥>은 결국 중년남자의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더 이상 거창한 인생의 목표도 없는 제트와 스파이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쓸쓸한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 중년 남자들의 인생과 겹쳐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흥미진진할 것 같은 그들의 현상범 사냥도 결국 그들의 '일'일 뿐이다. 일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비밥호에 몸을 맡긴 채 우주를 유랑한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우주와 우주를 건너가는 게이트가 생긴 뒤, 인간은 우주 전역으로 나아가게 됐지만, 그곳을 떠도는 인간의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카우보이 비밥>의 현상범 사냥꾼과 현상범의 대립은, 고독하고 권태로운 자와 그것을 깨려는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보통의 작품들은 주인공들이 무엇엔가 열중하지만,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열중하는 것이 없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스파이크와 제트에 얽힌 이야기들처럼, 그것은 그들이 선택 했던 것이라기보다는 다시 그들을 찾아오는 운명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뒤로한 채, 지금의 일상을 조용하게 살아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잡는 현상범들은 모두 무엇엔가 몰두한다. 마약을 팔아 한 몫 잡으려는 남자, 게이트 해킹에 몰두하는 할아버지, 심지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지구 위에 낙서를 그리는 인공위성까지… 그들은 모두 무언가에 몰두하며 외로움을 잊는다. 그것은 때론 해피엔딩일 수도 있고, 언해피엔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중지되고, 우주는 다시 권태로운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하는 이들의 열정과 좌절, 그리고 권태로운 일상의 대비야말로 평범한 이들의 삶 아니겠는가. 그래서 <카우보이 비밥>의 엔딩은 거의 대부분 외롭고 쓸쓸한, 혹은 좌절된 꿈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것은 때론 '비너스를 위한 왈츠'처럼 소녀에 대한 순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악마를 위한 노래'처럼 불노불사의 몸을 가진 아이에 관한 섬뜩한 호러로 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말은 모두 권태와 외로움을 동반한다. 다만 '심야의 헤비록'이나 '머슈룸 삼바'처럼 비밥호의 캐릭터들끼리 벌이는 소동에서나 그런 느낌이 살짝 가려질 뿐이다. 스파이크는 여자, 아이, 짐승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외로움과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중년 남성에겐 가족이 필요한건지도 모른다.

<카우보이 비밥>이 20세기말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주인공들이 몰두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을 끌어가던 것과 달리, <카우보이 비밥>은 가끔씩 캐릭터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 외엔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끌고 갔으며, 그것을 중년남성의 고독이라는 특유의 '분위기'로 통합했다. 우주를 떠도는 현상범의 반복적인 일상은 오히려 코미디부터 호러까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부터 인공지능 컴퓨터까지 모든 것을 끌어 쓸 수 있는 이유가 됐고, 이로 인해 <카우보이 비밥>이 동서양의 모든 대중문화 코드를 녹여내어 일반적인 시청자와 마니아적인 시청자 양쪽을 모두 만족하도록 만들었다. 제트의 애잔한 러브스토리 '가니메데 비가'와 가히 초현실적인 소동이라 할 수 있는 '심야의 헤비록'을 연이어 보여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카우보이 비밥>만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카우보이 비밥>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미국 TV 시리즈의 장점을 동시에 조화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카우보이 비밥>은 TV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DVD로 발매된 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물론 성공적인 애니메이션은 늘 여러 후속상품을 내놓고, <카우보이 비밥>의 첫 번째 박스 세트와 5.1 채널 컴필레이션판은 기대에 걸맞는 공을 들인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 채널 완전판은 그것들을 뛰어넘는 '지나칠 정도의' 정성이 들어있다. 이 타이틀의 진가는 5.1 채널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을 통해 <카우보이 비밥>이 가진 가치를 100% 발휘했다는데 있다. 새롭게 조정된 영상은 전체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기존 DVD와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단적으로 '소행성 블루스'에서 술집에서의 총격전에 놀라는 세 노인(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모습이 한 화면에 잡히는 장면을 보라. 그들의 주름이나 옷의 윤곽선이 매우 선명하게 살아나 있다. <카우보이 비밥>의 영상을 HD 수준으로 올려놨다든가 하지는 않았지만, 본래 간직하고 있던 섬세한 선, 그리고 그 선 사이의 음영을 보다 확실하게 살려놓았다.

하지만 영상의 변화는 사운드의 변화에 비하면 미약한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새로운 사운드는 단지 5.1 채널 믹스에 의의를 두지 않고, <카우보이 비밥>의 정수를 표현해 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 <카우보이 비밥>은 각본과 연출만큼이나 칸노요코의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타락천사들의 발라드'의 그 유명한 'Green Bird'처럼, 칸노요코의 음악은 영상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재즈부터 제3세계 음악까지 수많은 장르를 오가는 음악 스타일은 <카우보이 비밥>의 다채로운 색깔과 대응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카우보이 비밥>이 남자의 고독을 이야기하듯, 칸노요코의 음악 역시 그들의 쓸쓸함을 음악으로 풀어낸다. 물론 'Egg & I'(아이들이 페인트로 장난을 치는 국내 모 CF에 나온 그 곡이다)처럼 경쾌한 곡들도, 'Live in baghdad' 같은 헤비메틀도 있지만,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들은 재즈와 블루스를 중심으로 캐릭터들의 쓸쓸함을 극대화하거나, 영화음악과 마찬가지로 씬의 상황과 맞물려 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소행성 블루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소행성의 쓸쓸한 느낌을 전달하는 블루스 기타나 '악마를 위한 노래'의 하모니카 연주, '주피터 재즈'의 색소폰 연주는 모두 그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런 음악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간'이다. '심야의 헤비록'에서 비밥호의 방 안에서 말을 하는 에드의 목소리와, 바깥에서 짖는 아인의 소리는 미묘하게 다르다. 단지 소리의 거리감이 다른 것뿐만 아니라, 방과 바깥의 공기에 따른 소리의 톤 자체가 다르다. 에드의 목소리가 조금 더 굵고 분명하다면, 아인의 소리는 조금 더 엷게 퍼진다. 즉, <카우보이 비밥>의 5.1채널 믹스란 단지 사운드의 거리와 위치를 재조정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흐르는 공기의 미묘한 차이까지 계산한 것이다. 그래서 5.1채널의 사운드는 2차원의 애니메이션이었던 <카우보이 비밥>에 현실의 공간을 제공한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 들리는 효과음과 게이트에 대해 안내하는 소리는 미묘하게 안과 바깥으로 나뉘어져 실제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여러 씬에 등장하는 총격씬은 다른 소리 사이를 뚫고 들어와 씬의 중심으로 부각된다. 공간의 현실감을 살린 <카우보이 비밥>의 사운드는 <카우보이 비밥>을 애니메이션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블록버스터 영화의 위치로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 공간의 진정한 힘은 음악에서 발휘된다. 기존의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이 영상에 '삽입'된 것일 뿐이었다면, 5.1 채널 세트의 음악은 그 소리들뿐만 아니라 그 소리와 소리 사이, 그리고 소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 이외에 영상이 가지고 있는 공간의 넓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음반으로 듣던 블루스 기타 연주를 황량한 사막 위에서 듣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해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은 넓은 공간 안에서 홀로 서 있는 고독한 남자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한다. '비너스를 위한 왈츠'에서 어느 순간 다른 소리들을 밀어내고 화면의 중심에서 작품의 엔딩을 장식하는 오르골 연주, '주피터 재즈'에서 그렌의 우주선이 우주를 유영하자 아이들의 코러스를 주변에 깔고서 마치 그 우주선처럼 공간의 중심에서 홀로 유영하듯 진행되는 색소폰 연주는 5.1 채널 세트에서 완성된 <카우보이 비밥>의 감수성의 정수라 할만하다.

또한 공간이 살아난 <카우보이 비밥>의 사운드는 공간의 중심에 놓이는 쓸쓸한 음악들뿐만 아니라 그 공간 바깥의 음악들이 가지는 감성을 극대화 한다. 스토리가 한창 진행될 때, 그 이야기와 섞이지 않고 그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그 음악들을 통해 씬의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홍키 통크 위민'에서 도박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달리 조금은 관조적으로, 풍성하게 연주되는 재즈는 에피소드 전체에 페이의 등장에 어울리는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가니메데 비가'에서 제트가 과거의 연인과 관계있는 남자를 추격할 때 흘러나오는 'ELM'은 남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추격전의 효과음 보다 조금 더 '멀리서' 퍼지면서 제트의 복잡한 심경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이런 효과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타락천사들의 발라드'일 것이다. 페이가 마오 옌라이를 찾아 오페라 극장에 왔을 때, 'Ave maria'는 잠시 사운드의 중심에 서서 오페라의 비극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오페라는 배경음으로 조용히 묻혀 들어가면서, 영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화들과 '거리'를 둔다. 그래서 오페라는 계속 진행되지만, 마오 옌라이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는 페이와 비셔스의 대화는 마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적막한 느낌을 준다. 이는 이미 영화와 애니메이션 양쪽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지만, <카우보이 비밥>은 여기서 BGM과 씬의 대화 사이의 공간, 즉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를 만들어냄으로써 그 효과를 영화의 그것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반대로 스파이크와 비셔스의 대결 뒤에 흘러나오는 'Green bird'는 메인 보컬을 센터채널에, 코러스를 리어채널로 분리해놓은 뒤, 이들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하여 코러스가 메인 보컬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컴필레이션이 'Green bird'의 스케일을 살려냈다면, 5.1 채널 세트의 'Green bird'는 한 공간 안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풍부함까지 그대로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카우보이 비밥> 5.1채널 세트는 <카우보이 비밥>이 어떤 작품이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단지 더 나아진 스펙이나, 그로 인해 증가한 시청각적인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건, 공중파 방송에서는 단 13회로 끝났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26회의 인기작으로 만들고, 그에 이어 좋은 퀄리티의 DVD 박스세트를 만들며, 5.1채널 컴필레이션을 만든 뒤, 기어이 작품의 가능성을 완전히 끌어낸 5.1채널 세트를 끌어낸 제작진의 집요한 열정이다. 5.1채널 세트에 담긴 몇 편의 에피소드를 새로 편집하고, 지면으로나마 코멘터리를 덧붙이며, 각종 설정과 세계관을 담은 부록까지 모두 정리한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혹시 <카우보이 비밥>의 '완성'을 곧 자신의 '중년의 로망'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충분히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었던 것 같다. 적어도 권태롭지 않을 만큼.

카우보이 비밥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1. <카우보이 비밥>은 대중문화 패러디뿐만 아니라 사회 풍자적인 요소도 함께 담겨 있다. '카우보이 펑크'의 폭탄 테러범은 제작 당시 미국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를 모델로 한 것이고, '브레인 스크래치'의 사이비 종교는 실제로 집단 자살한 모 종교단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게이트웨이 셔플'에서 바다쥐의 포획을 반대하는 광적인 환경단체는 현재 일본의 고래포획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일본은 고래 고기를 가장 즐겨먹는 나라고, 이 때문에 고래 포획에 대한 문제가 계속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2. '소행성 블루스'의 무대가 되는 소행성의 거리에는 한글로 된 낙서가 있다.

3. 작품 제목은 물론 에피소드 제목도 모두 음악으로 도배하고 있는 <카우보이 비밥>이지만, 정작 주인공들의 음악적인 취향은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 관련 패러디 역시 안토니오-카를로스-조빔 세 노인 정도가 전부다.

4. 머나먼 미래에도 야구는 있다. 농구나 축구는.............. 알게 뭐람.

5. 스파이크를 가장 애먹인 상대는? 물론 비셔스나 '피에로의 진혼곡'의 미친 피에로도 있지만, 그래도 약물의 힘으로나마 스파이크를 정말 죽이기 일보 직전에 몰아놓은 '소행성 블루스'의 첫 번째 현상범이 가장 강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아마 작품의 첫 회이므로 스파이크를 한번쯤은 곤경에 빠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6. 닮은 사람 찾기. 카림 압둘 자바, 그리고 과거 중국의 모 주석. ('주피터 재즈'를 보시라)

7. 믿을 수 없겠지만, 'Green bird'는 칸노요코가 직접 부른 것이라 한다.

8. 비밥호의 멤버가 되기 위한 조건 : 심하게 다리가 길어야 한다. 대신 레드 드래곤의 간부들은 나이 들면 다 키가 작아지는 듯 하다.

9. 페이의 과거는 '마이 퍼니 발렌타인'에서 공개된다. 하지만 페이가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이란 설정은 그 전에도 약간의 힌트가 주어진다. '게이트웨이 셔플'에서 게이트의 특성으로 인해 생긴 미사일의 허상을 보고 놀라는데, 스파이크와 제트는 전혀 놀라지 않으며, 페이에게 고등학교 때 뭘 배웠냐고 타박한다. 게이트가 생길 당시 냉동인간 신세였던 페이는 고등학교 때 그런 걸 배웠을 리 없다.

10. <카우보이 비밥>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레드 드래건이 뭘 하는지, 레드 아이가 어떤 원리로 그런 힘을 줄 수 있는지, 스파이크가 레드 드래건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페이의 과거가 정말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후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DVD의 해설지를 통해 약간 설명한 것이 있긴 하지만, 작품만 봐서는 그 어느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리즈를 즐겁게 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게 바로 <카우보이 비밥>의 기이한 매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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