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단관개봉 ‘작은영화’ 들 입소문 인기몰이
2005-09-21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은하수를...> 1만여명 관람 10월 첫주까지 연장상영
<어떤 나라> <천리마 축구단> 개봉 3주만에 7000여명 발길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단독 개봉한 서울 종로구 필름포럼 매표소에 줄을 선 관객들. 이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1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사진 필름포럼 제공.

무조건 많은 극장에 걸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할리우드식 흥행 공식이 지배하는 극장가에서 단관 개봉한 작은 영화들이 소리없이 관객 동원에 성공하고 있다. 지난 8월25일 필름포럼(옛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추석 연휴까지 관객 수 1만명을 넘겼고, 같은 날 하이퍼텍나다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은 7천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다. 숫자만 단순비교한다면 <웰컴 투 동막골>(700만명)이나 <가문의 위기>(330만명)의 기록에 비해 초라하지만 스크린 수와 홍보 물량이 흥행으로 직결되고 예술영화가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극장가에 단비와 같은 숨통을 틔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은하수를...>는 본래 한국 개봉이 불투명했다가 필름포럼 쪽의 눈썰미로 단관에서나마 개봉의 행운을 얻은 영화다. 개봉 당시 거의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통해 개봉 2주차부터 점점 관객이 늘어 2주로 계획됐던 상영이 추석까지 연장됐으며 추석 연휴 때는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 3일간 이 영화의 좌석점유율은 80%. 지난 4월 예술전용극장으로 개관한 뒤 관객 수 1500명을 동원한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불안>을 제외하고는 개봉작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극장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영화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이 수건을 들고 다니는 데 착안해 지난 16일 마지막회 상영에서 마련한 ‘히치하이커되기 수건 이벤트’에서는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 전원이 직접 수건을 가져와 등장인물처럼 머리나 어깨에 두르고 영화를 보는 등 <은하수를...> 관람은 컬트적 현상이 되고 있다. <은하수를...>는 10월 첫주까지 연장상영에 들어갔다.

<은하수를...>과 같은 날 대학로 하이퍼텍나다에서 개봉해 교차상영되고 있는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은 영국인인 다니엘 고든 감독이 제3자의 시각에서 각각 2000년대 북한의 일상과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북한 선수들의 활약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개봉 3주만에 706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2003년 6주간 상영했던 <영매>(1만6천명)에 이어 하이퍼텍나다에서 단독 상영했던 다큐멘터리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다큐멘터리가 한국에서 좀처럼 흥행이 되지 않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꾸준히 점유율 40%를 기록하고 있는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의 흥행성적은 주목할 만하다. 하이퍼텍나다 쪽은 “전통적으로 극장을 찾지 않는 50대 남자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주말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객이 많다는 게 다른 영화의 관객층과 다른 특징”이라고 말했다.

22일 종로 시네코아에서 단관개봉 하는 일본 영화 <토니 타키타니>는 20일 오전 예매사이트인 인터파크에서 이번 주말 최고 흥행기대작인 <너는 내 운명>을 누르고 예매율 1위(32.2%)를 기록해 영화 배급사인 스폰지 관계자들까지 놀라게 했다. <토니 타키타니>의 온라인 홍보사는 인터파크로부터 “표를 배급사에서 대량구매한 것이 아니냐”는 확인 전화를 받았을 정도다.(인터파크 예매율은 특정 영화의 개봉관 좌석수 대비 예매수가 아니라, 전체 영화의 예매수에서 특정 영화의 예매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임.) 오후에는 <너는 내 운명>과 순위가 바뀌었지만 전국 400개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이 영화와 단 하나의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토니 타키타니>가 비등한 예매율 경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화제거리로, 작은 영화의 조용한 저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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