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5년 전에 초고를 쓴 <복수는 나의 것>은 “개인의 삶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사회, 자기 삶이 자기 뜻대로 안풀리는 갑갑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얼핏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와 닮았다.
영미 역의 배두나씨와 류 역의 신하균씨가 이끄는 전반부는 흑백이다. 농아자 류는 병든 누나를 살리려 애쓰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퇴직금마저 장기밀매사기단에게 날린다. 이러자 류의 여자친구이자 과격한 무정부주의자 영미가 그를 부추긴다. 이들은 공장 사장 동진의 어린 딸을 유괴해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동진 역의 송강호씨가 주도하는 후반부의 화면은 핏빛 기운이 감도는 칼라다. 동진은 고졸 학력에 말단 전기공으로 시작해 공장 사장이 됐지만 바쁜 일과 속에 가정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당했다. 그에게 남은 건 어린 딸이지만 어느날 유괴된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동진은 그 때부터 범인 사냥에 나선다.
쫓고 쫓기는 인물들은 더 이상 절망할 게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각기 다른 상대를 대상으로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극의 잔인함은 냉혹한 사지절단으로 유명했던 <텔미썸딩>에 버금갈 터이지만, 그들이 내뿜는 분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인물들의 농밀함이 더욱 섬뜩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