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뭐죠”라는 질문과 그에 이어지는 장황한 해석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심지어 성격에 대해 준엄한 충고를 하는 순간에 이르면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세요?”라고 물어볼까 망설이게 된다. 한 번은 정색을 하고 물어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썰렁한 상황을 겪고 나서 다시는 그런 반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혈액형 놀이’는 서로 소통하기 위한 사회적 게임이고, 나름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안다. 그와 비슷한 게임 중의 하나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혈액형 놀이’와 같이 전형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삼류 정신분석학과 ‘취향의 사회학’을 동원하면 상대의 내밀한 본성을 알게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몇 년을 우물쭈물했는데, 이러다가는 아무 취향도 없는 인간으로 매도되겠다 싶어 모범답안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 특히 ‘여배우’에 대해서는 아직도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속마음은 솔직히 이렇다. 가능성이 없는 일은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다고. 하지만 한 여배우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금지된 사랑>이라는 생뚱맞은 한국 제목으로 배급된 프랑스 영화 <겨울의 심장>(Un Coeur en hiver)에서 까미유 역을 맡은 엠마누엘 베아르다.
두 명의 남주인공, 막심과 스테판은 오랜 친구 사이다. 어느 날 막심은 자신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젊은 애인인 바이올리니스트 까미유를 스테판에게 무심히 소개해준다. 주인공들이 대화조차 아끼며 눈빛과 미소만을 주고 받으니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거의 없지만, 영혼을 조율하는 듯한 라벨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차츰 긴장을 더해간다. 그 긴장은 서로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스테판과 까미유가 과연 새로운 연인이 될 것인가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어지간한 예술가를 능가하는 장인정신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스테판은 도무지 범속한 세상 속으로는 자신을 던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천직인 악기를 제작하는 일 외에는 매사에 참여하기보다 관조하는데, 사랑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까미유가 차츰 그에게 빠져들고 마침내 무너지듯 사랑을 고백해도 그는 슬며시 비껴가고 만다. 자신도 역시 까미유를 좋아하고 있음에도. 남성 판타지의 정점이라 할 여인이 ‘겨울의 심장’을 가진 남자에게 거절당하고 괴로워 할 때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스테판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행동이 퇴화된 자신의 삶, 운명 같은 자신의 고독에 대해 쓸쓸한 상념에 잠길 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 영화에서 까미유는 사랑에 실패한다. 실패는커녕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다. 스테판이라는 불모의 남자 앞에서는 까미유조차 꽃피지 못하고 시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빼어난 아름다움과 기품에 불구하고 사랑을 얻지 못한 까미유이기에 내게는 역설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고 구입한 라벨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까미유의 열매맺지 못한 서늘한 매력에 대하여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이 영화 속에서 내가 정말로 공감했던 것 또는 진실로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그것은 까미유의 아름다움인가 아니면 스테판의 ‘겨울의 심장’인가? 이제는 세월이 너무나 흘러 더 이상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