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은 잊어라
2005-10-08
글 : 주도연 (자유기고가)
CG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한 Studio4℃의 <마인드 게임>
<마인드 게임>은 CG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극한까지 끌어낸 수작이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펑크느낌 가득한 다채로운 색상, 그리고 화려한 이펙트와 광원효과 등 지금의 CG 애니메이션이 가진 매력을 한 데 쏟아 부은 듯하다.

우리 생활 속에 만나는 모든 사물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유비쿼터스의 시대. TV, 전자레인지, 에어컨 등 우리에게 친숙한 가전제품들에도 또 다른 디지털의 숨결이 스며들어 네트워크화 하고 있다. 기존 사용자들에게 친숙함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제품들이야말로 유비쿼터스 시대를 여는 제품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굳이 유비쿼터스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은 일찌감치 이러한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하 CG 애니메이션)들이 소위 말하는 3D 애니메이션(<토이스토리>, <인크레더블>처럼 캐릭터, 배경 등의 오브젝트를 전부 렌더링하여 제작된 작품들)으로만 인식되던 시대. 이 때의 CG 애니메이션은 기존 애니메이션들과 크나큰 이질감을 보이며, 거의 절망에 가까운 퀄리티를 보였다. 당시의 중견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자신은 CG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하기도 했다. 그와 달리 Studio4℃, GONZO, PRODUCTION I.G. 등 현재 일본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선두업체로 자리잡은 이들은 CG가 지닌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결국 기존 셀 등의 아날로그 제작방식 애니메이션과 이질감 없는, 게다가 CG만이 갖는 독특한 영상미를 지닌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아니메지>를 통해 “CG 애니메이션은 끔찍하다”라고까지 표현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최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CG 기법을 사용했음은, 지금의 CG 애니메이션이 갖는 위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인드 게임>은 이러한 CG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극한까지 끌어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엑스트라>, <음향생명체 노이즈맨>, <서바이벌>, <공주 아르테>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기존 아날로그 제작방식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기법(예를 들어, 일반 투과광 기법으로 구현하기 힘든 빛의 표현이나 CG의 공간이기에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다양한 카메라 워크 등)을 선사한 Studio4℃의 작품(Studio4℃는 <애니매트릭스>에서 다수의 작품을 선보이고, 지난해 말 국내에도 방영했던 나이키의 애니메이션 CF를 만든 제작사)이다.

<이노센스>, <스팀보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애플시드> 등 그 어느 해보다 쟁쟁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됐던 지난 2004년에 <마인드 게임>은 일본의 문화청에서 주최하는 제8회 문화청미디어예술제(http://plaza.bunka.go.jp, 한국어로도 서비스 중이다)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로빈 니시의 동명의 원작을 각색해 만든 이 작품은,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의 스피디한 연출과 이를 뒷받침하는 콘티, 그리고 카메라 워크가 작품 전체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히 CG이기에 가능한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펑크느낌 가득한 다채로운 색상, 그리고 화려한 이펙트와 광원효과 등 지금의 CG 애니메이션이 가진 매력을 한 데 쏟아 부은 듯한 <마인드 게임>. 요란한 듯 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의 기본인 움직임(애니메이션)과 스토리까지 충실하게 만족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점잖은 일본 문화청 어르신들의 마음까지도 크게 흔든 듯 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대결하여 해답을 찾아내려 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품격없는 표현도 볼 수 있지만, 클라이맥스의 감동을 향해서 불가결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복잡한 화면처리를 거친 농도짙은 비주얼을 지닌 작품들이 넘쳐나는 올해에, 디지털도 아날로그도 상관없이 강한 터치에 묻어나는 생명력을 재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 기쁘기 그지없다”는 심사평을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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