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오석근 감독의 <연애>는 17년차 배우 전미선의 첫 주연작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서 “내가 1시간 40분을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엔 망설였다는 그녀는 <연애>에서 생활고에 내몰려 몸을 파는 30대 주부 어진으로 나온다. 어진은 현실의 벼랑 끝에서 마지막 연애의 상상을 붙잡는 여인, 그러나 그 파국의 상처를 온몸으로 다시 받아내야 하는 여인이기도 하다. “부족한 것 투성이다. 일찍 연기를 시작했지만, 따지고 보면 출연작이 많지 않다”는 그녀의 겸손이 실은 거짓말임은, 한 인물의 마음 속 결을 섬세하게 그려낸 <연애>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들었다.
=<살인의 추억> 끝나고 나서 차승재 대표(싸이더스 FNH)가 나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면서 시나리오를 줬다. 그런데 내가 과연 처음부터 끌고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차 대표가 한마디 했다. 연기 맛을 알았을 때 저질러야지, 피하면 후회도 미련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부족한 나를 받아준 감독님에게 감사한다. 사실 <연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감사’다. 감사할 사람이 너무 많다. 항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이)미연이나 잘 하라고 다독여줬던 송강호 선배나 봉준호 감독이나.
-연기를 한지가 15년이 넘었다. 이제서야 ‘맛’을 알았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어려서부터 욕심, 질투, 승부욕 등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자존심이나 줏대를 버려야 하는 외적 환경들도 싫었고. 스스로 연기는 취미 정도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다 3년 정도 활동을 중단하고 쉰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이후 <번지 점프를 하다>와 드라마 <왕건>을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을 지나 <연애>까지. 전엔 몰랐는데, 한 작품씩 더해지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지더라. 연기에 올인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래서 가능했고.
-오석근 감독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우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사실 나보다 감독님이 어진과 비슷하다. 말수도 없으시고. 또 자기 주장 드러내지 않고서도 불편함없이 사는 그런 분이니까.(웃음) 어진이 여자이다 보니 감독님은 이런게 필요하지 않냐고 물으시는 정도였다. 그렇게 디테일한 설정은 필요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은 그런 내 반응에서도 또다른 설정이나 이야기를 뽑아내시더라.
-촬영 때 가장 애먹은 장면은 뭔가.
=머리핀에 보석을 일일이 붙이는 오프닝 장면. 카메라만 가져다 대면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때마다 면봉에서 보석이 떨어져 결국 집에 가져가서 수없이 연습을 해야 했다. 지금은 진짜 아르바이트를 해도 될 정도로 잘한다. 감정 씬은 의외로 쉬웠는데, 간혹 길을 잃을 때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진에게서 느껴졌던 감정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어진의 삶은 답답하지만, 어진이라는 인물은 애틋하고, 또 사랑스럽지 않나.
-기상 등의 문제로 촬영이 애초 계획보다 늘어났다. 배우로서는 감정을 유지하기가 좀 힘들었을텐데.
=어진이라는 인물이 감정을 내보이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인물이 아니잖나.(웃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세트가 무너지는 일도 있었지만 별 소란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조명감독님이 배우가 쓰러져야 우리도 하루쯤 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신 적도 있다. 스탭들을 보면 대개 부산 출신이거나 아니면 감독님 후배들이었고, 제작진의 호흡이 좋았다. 연기하는데 지장이 없었던 것 같다.
-뒤늦게 솟은 열정을 어디에 쏟아붇고 싶나.
=영화 계속 해야지. 드라마 보다는 영화에서 내 능력을 더 많이 발견하는 것 같다. 언젠가 총쏘는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키가 작아서 그런지 잘 안 시켜준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