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이마무라 쇼헤이의 <신들의 깊은 욕망>
2005-10-08
글 : 홍성남 (평론가)
인간 본능에 대한 영화의 인류학

이마무라 쇼헤이의 1966년작 <인류학입문>은 억압적인 사회를 뛰쳐나간 주인공이 배 위에서 완벽한 합일을 꿈꾸며 이상적인 여성의 인형을 만드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아마도 자신만의 세계가 이뤄진 그 배가 흘러 들어감직한 곳, 2년 후에 만들어진 <신들의 깊은 욕망>은 바로 그 곳에서 시작이 된다. 이번에 이마무라의 발길이 닿은 그 곳은 ‘세련된’ 도시 세계와는 달리 동물적인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 고대적인 세계이다. 여기서 이마무라는 내내 그를 사로잡았던 문제, 즉 진정으로 일본적인 것의 기원과 정수는 어떤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탐구할 기회를 갖는다.

영화는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섬 쿠라게지마로 우리를 데려간다. 신화적인 기운마저 느끼게 하는 그곳의 후토리 집안 사람들은 마치 일본 땅을 만든 오누이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현신인 듯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로부터 태어난 네키치는 누이 우마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정신 지체상태인 듯한 그의 딸 도리코는 역시 오빠 가메타로를 포함한 마을 남자들과 마구 육체적 관계를 맺는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개발’을 위해 도쿄로부터 온 엔지니어를 받아들이면서 이 ‘야만의 땅’에도 변화와 균열이 생기게 된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의 원형적인 모습인 듯 한 하나의 어떤 흥미로운 소우주, 야생적이고 순수하면서 자유로운 그것에 대한 ‘인류학입문’과도 같은 영화다. 우선적으로 영화는 자연에 대해 보다 밀접한 삶의 방식과 삶에 대해 보다 유희적인 태도가 지배하는 그 세계가 펼쳐놓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그러면서 그 세계에서 어떻게 변화의 과정이 진행되는가를 들여다보기에 이른다. 상징적이게도 도마뱀을 반 토막 내버리는 불도저의 돌파력은 결국에는 섬을 코카콜라와 관광객들이 들어온 ‘불순한’ 곳으로 만들고 만다. 분명히 <신들의 깊은 욕망>은 현대화의 물결이 어떻게 원시적 세계를 ‘오염’시켰는가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이마무라는 그 진보의 과정을 통렬히 비난하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마치 가메타로가 죽은 도리코의 유령을 보고서 기차를 멈추는 것이 소용이 없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섬의 현대화란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마무라의 이런 시선이 패배적인 체념의 그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얼핏 무뚝뚝해 보이는 그의 시선은 마치 삶(의 고통)과 부대끼면서 어떤 생명력을 얻어가는 자기 영화들 속의 주인공들의 태도를 닮았다. 그렇기에 그는 원형적 정신의 몰락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유머, 비극, 그로테스크, 스펙터클 등의 여러 요소들을 한데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스펙터클한 비주얼 위에 진중한 탐구의식을 펼쳐놓은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이마무라의 최대 야심작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사에 유사한 실례가 가끔 있듯, 창작자 자신에게 이것은 고통스런 야심작이었다. 원래 오키나와 군도의 한 섬에서 6개월로 잡혀 있던 촬영기간은 거기에서 무려 1년이나 더 소요가 되었다. 그러면서 배우들의 불만은 커져갔고 이전까지 배우들과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던 이마무라는 괴로움에 빠졌다. 게다가 이 대작은 흥행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영화 이후로 이마무라는 거의 10년에 이르는 기간을 픽션영화의 세계를 벗어나 다큐멘터리 영화의 세계에서만 은거했다. 스스로는 일본 뉴웨이브의 종언을 알렸다고 다소 과장되게 말하는 이 영화가 이마무라의 영화경력에서 중요한 분기점에 해당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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