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세이준에게 현답을 바라며 똑똑한 척 질문을 던졌다가는 바보되기 쉽상이다. 기자라고 다를바 없다. 손수 산소 호흡기를 끌고 부산을 방문한 82세의 거장은 기자회견장에서도 현문의 우답으로 수많은 기자들의 무릎을 꿇렸다.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감독이 되려면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다. 지혜따위는 필요없다.(폭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영화찍고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지금 기억에 남는건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밖에 없다.(폭소)
장쯔이를 왜 캐스팅했냐고? 그런건 저기 서 있는 프로듀서한테 물어봐라.(폭소)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한국영화를 다 보지 못해서 모르겠다.(폭소) 사람들이 나를 괴짜라고 부른다고? 나는 정상인데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거 아닌가.(폭소) 내 영화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하드보일드라고? 나같은 오락감독은 여러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드보일드든, 비련의 영화든, 춤영화든, 이런걸 다해야 진정한 오락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폭소) 82세의 나이에 어떻게 감독을 할 수 있냐고? 감독은 너무 힘든 일이라 왜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00일 가까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게 영화인데 이것처럼 바보같은 일이 어디있느냐.(폭소)
핸드 프린팅 자리라고 다를리가 있나. PIFF 광장에서 열린 핸드 프린팅 행사에서는 “내가 얼굴은 좀 팔렸을지 모르나, 손자국을 팔긴 처음”이라며 사뭇 감동적인 소감을 말하다가도, 프린팅 재료가 늦게 도착하자 김동호 위원장에게 “노래를 하거나 춤이라도 좀 춰봐라”고 주문해 광장에 모인 여고생들로 하여금 근엄한 위원장에게 “노래해!”를 연발하게 만들었던 스즈키 세이준.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핸드 프린팅 소감을 묻는 기자를 자신의 손앞에 다가오도록 했다. “이제 잘 보이나? 이 손한테 물어봐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B급 괴작들을 만들어 (때로는 고다르에 비견되면서) 일본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온 괴짜 늙은이는, 우답속의 현답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스즈키 세이준의 우답아닌 현답은 딱 한번이었다. “일본에는 개도 걸으면 차이는 일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특별히 찾으려 하지 않으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