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나게 할 만큼 ‘정통’은 아니지만, 서부영화의 대를 이은 새로운 ‘하이브리드 웨스턴’ 두편이 개봉해 눈길을 끈다. 공상과학과 서부극을 접목시킨 <세레니티>(Serenity)와, 스릴러와 약간의 호러를 가미한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가 그 작품들. 이 두 작품은 점점 잊혀져가는 서부영화 장르를 기존 인기 장르에 부합시켜 신선한 느낌을 준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TV시리즈 <버피와 뱀파이어>의 조스 웨든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세레니티>는 <폭스TV>가 조기 종영시켜 골수팬의 원성을 받았던 웨스턴SF TV시리즈 <파이어플라이>를 영화한 것. TV에서 시즌 중간에 종영됐지만, 방송되지 못한 에피소드를 포함한 DVD 세트의 인기 판매(9월 말 현재 50만 세트 판매)에 힘입어 영화제작이 가능해졌다. 유니버설사가 제작한 이 작품은 SF영화로는 작은 규모인 4천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졌으나,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웨스턴과 SF의 특색을 그대로 살려 평론가에게는 호평을, 골수팬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500년 앞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세레니티>는 멋진 우주함대 전쟁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주인공 말콤 레이놀즈를 비롯한 출연진들의 의상이나 말투, 무기들, 총격전 방식, 체이스 장면 등이 정통 서부극을 방불케 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는 정통적인 서부극 스타일을 현재 시제에 도입한 작품으로, 전형적인 미국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예기치 못한 폭력사건 때문에 또 다른 사건에 휩쓸리게 되는 한 남자 톰(비고 모르텐슨)의 이야기다.
‘크로넨버그 감독이 서부극을?’ 하면서 의아해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톰은 식당에서 손님과 종업원을 위협한 총기강도 두명을 서부극에서나 볼 것 같은 멋진(?) 동작으로 단숨에 죽인다. 영화를 보던 관객도 톰의 이같은 ‘영웅적인 행동’에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하지만 감독은 카메라를 계속 돌리며 톰이 죽인 강도들의 모습, 톰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를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박수갈채도 이쯤 되면 사라진다).
3200만달러를 투입한 <폭력의 역사>는 서부극의 형식을 따라 히어로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당히 해야 할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일반 할리우드영화나 과거 정통 서부영화라면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친 뒤 가족과의 화목한 장면으로 끝을 내겠지만, 크로넨버그 감독은 그렇게 간단하게 관객을 놔주지 않는다. ‘폭력’을 ‘엔터테인먼트’로 즐긴 만큼,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 미국에서 오랜 역사에 걸쳐 정당화돼온 ‘폭력숭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