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동의 두 번째(이자 그 자신이 혼자 연출한 첫 번째)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하 <내 생애…>)을 본 다음 가장 먼저 난감하게 생각된 것은 도대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어떻게 요약하는 것이 요령 있는 것일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박은영은 기적처럼 12줄로 요약했다. (<씨네21> 522호, 리뷰) 그러므로 줄거리가 궁금하신 분은 그걸 한눈에 읽으면 된다. 그런 다음 나는 뒤에 실린 이 영화에 대한 20자평을 보았다. 네명이 썼는데 그중에서 이성욱은 20자평에 “그 다음의 일주일이 궁금하다”라고 썼다. (그런데 띄어쓰기를 포함해서 15자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성욱의 별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별 셋), 그 지적은 이 영화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일주일은 그냥 일주일이 아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다. 그 말이 역설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런데 보고난 다음 그 즉시 “그 다음의 일주일이 궁금”할 때 그것은 궁금함이 아니라 어리둥절함이다. 보고난 다음 미안하게도 나는 이성욱과 똑같은 의미에서 그들의 다음 일주일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름에 대한 독자들의 기억을 환기시켜드리기 위해 박은영의 리뷰를 약간 수정하여 등장인물을 한번 더 소개하자면) 멀티플렉스 재건축 계약을 앞둔 영화관 곽씨네하우스의 곽 회장(주현)과 그 앞의 간이커피숍을 운영하는 오 여인, 외판원 창후(임창정)와 새신부 선애, 창후에게 카드대금 독촉전화를 하는 전직 농구선수 성원(김수로), 그 성원에게 어린이 돕기 성금 TV 프로그램 기자가 찾아와 ‘어쩌면 딸일지도 모르는’ 병석에 누운 진아를 소개한다. 진아의 친구 지석의 아버지는 연예기획사 대표 조 사장(천호진)이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유정(엄정화)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가정부를 찾는다. 찾아온 가정부는 아름다운 ‘청년’ 태현이다. 유정은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나온 나 형사(황정민)와 다툰 다음 사귄다. 유정의 병동에 수녀 서원을 앞두고 자살미수를 벌인 수경(윤진서)이 실려오고, 그 옆 침대에 그녀가 짝사랑한 가수 정훈이 조 사장의 기획사에서 퇴출당하자 자살 기도를 한 다음 실려온다. 영화는 그들의 일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따라간다. 그냥 좀더 간단하게 설명하면 곽 회장과 오 여인, 창후와 선애, 성원과 진아, 조 사장과 태현, 유정과 나 형사, 수경과 정훈, (그리고 진아와 지석), 이렇게 여섯, 혹은 일곱 커플의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하필이면’으로 매인 일주일
여기서 나의 방점은 그 여섯, 혹은 일곱 커플 중의 그 누가 아니라 일주일에 있다. 나는 이 일주일이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주일은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번 주도 그러했다. 그러나 단 하루의 예외도 없는 맑은 날씨는 이상하게 내 관심을 끌었다. 말하자면 날씨는 이들의 삶, 혹은 사건에 어떤 형식으로건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제가 <내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내 생애…>와 <숏 컷>은 전혀 다른 영화이다. <숏 컷>은 일종의 나비 효과에 관한 영화이다.
마찬가지로 <매그놀리아>는 도미노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 다음 이 두편의 영화에서 마지막 순간 지진, 혹은 개구리 비가 쏟아지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예지적 원인을 모르는 어떤 결과에 대해서 그것을 눈앞에 펼치는 그 어떤 초월적 주체성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순간 폐쇄적인 순환은 갑자기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여기서 이 말의 핵심은 ‘그 어떤’에 있다. 차라리 구태여 떠올려야 한다면 <내 생애…>는 <러브 액츄얼리>에 가깝다. 그러나 그 두 영화가 서로 다른 것은 <러브 액츄얼리>가 ‘우연히도’의 매듭으로 묶는다면 <내 생애…>는 ‘하필이면’으로 매인 매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묶은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푸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내 생애…>에는 수없는 ‘하필이면’이 차례를 바꿔가면서 등장한다. 곽씨네하우스에 곽 회장에게 외판원 창후가 접착제를 팔기 위해 일요일에 들릴 순 있다. (영화는 일요일 오전, 여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창후는 곽 회장의 지갑을 줍는다. 조 사장과 정신과 의사 유정은 이혼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알고보니 게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정부를 구하는데 하필이면 ‘아름다운’ 청년 태훈이 찾아온다. 수녀 서원을 앞둔 서경이 미사를 보는 그 성당에 그녀가 애절하게 좋아하는 가수가 일요일마다 연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이 미사를 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몰래 데이트를 위해 온다. 유명 가수의 데이트 장소치고는 참으로 유별난 취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취향을 존중하기로 하자) 그런데 그 가수가 하필이면 같은 주에 퇴출당한 다음 자살 기도를 하고, 같은 자살 기도를 한 수경의 병실을 함께 쓰게 된다. (동방신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살 기도를 한 소녀 옆 침대에 믹키유천이 입원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창후에게 카드 독촉 전화는 누군가 해야 하며 그 악역을 성원이 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성원은 전직 농구선수였으며, 지금 TV 프로그램에서 진행 중인 어린이 돕기 성금 모음에 캐스팅된다. 그런데 그 소녀의 남자친구는 하필이면 조 회장의 아들이자, (같은 말이지만) 유정의 아들이다. 유정은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서 하고 많은 상대를 놓아두고 형사와 논쟁을 벌인 다음 사귀기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유정의 아들 지석은 본의 아닌 선애의 유괴극에 휘말린다. 그때 지석을 돌보던 사람은 나 형사이다. (만일 그의 직업이 형사가 아니라면 이 에피소드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성원은 술에 취해 지하철의 의자에 앉아 넋두리를 한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는 알지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창후가 하필이면 그때 그 의자에 함께 앉는다. 나는 영화에서 하필이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현실에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애…>에서의 ‘하필이면’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모두가 하필이면의 주술에 걸려 있기 때문에, 마치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예정조화의 그 어떤 더 큰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같은 말이지만 이 영화는 ‘하필이면’이 없다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만일 이 여섯, 혹은 일곱 이야기를 따로 떼어놓고 요일별이 아니라 커플별로 선형진행을 시키면 이들 모든 등장인물이 똑같이 등장한다 할지라도 그 ‘하필이면’의 대목에서 이야기는 발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혹은 누구라도 아무리 영화라지만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영화는 논리적 설명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정념의 사연을, 사건의 필연성을, 혹은 우연성의 알리바이를 대는 대신 황급히 다음 에피소드로 도망친다. 우리는 번번이 따돌림당하고, 다시 그 에피소드로 돌아올 때 등장인물들은 이미 다른 에피소드의 인물들에게 핑계를 떠넘기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이들은 이인삼각 경기를 벌인다. 상대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각자의 에피소드로서는 그래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각자의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현실로부터의 뒷걸음질이 있다.
여기에는 전체로서는 자기 폐쇄적인 회로 안에 갇혀 있으면서 정작 에피소드들은 자기의 문제를 남에게 떠넘겨 그 안에서 모든 것의 답을 얻기 위해 만들어내는 대체 현실만이 남는다. 말하자면 현실의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서 자기 위로, 혹은 현실과 맞바꿔친 화기애애한 가상의 우연들. 그러나 원인의 원인이란 없다. 우리들의 행동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친 (그 어떤 알 수 없는) 행동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의 의지에 대한 책임을 미룰 때, 여기에는 허울의 배후에 숨으려는 안간힘이 있다. 단 한 마디로, 기만. 그러므로 나는 <내 생애…>를 보고난 다음 차라리 일주일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일어난 것은 사건이 아니라 기적이다. 아무리 진리가 우연에 달려 있으며, 모든 우연은 그것이 벌어지고 난 다음 사실이 된다 할지라도, 그 상황의 내부에 가담한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는 매듭이 다양성의 이름으로 사실상 그 아무것도 아닐 때, 그 매듭은 그들이 서로에 대한 서로의 ‘사라지는’ 매개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어떤 초월적 종합이 있다. 거기에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어떤 폭력적 상상력. 자신의 시도를 절대 실패하지 않으려는 어떤 우연의 강제성, 하여튼 어떤.
그들은 왜 모두 쌍쌍을 이뤄야 했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충분한 시간이 없다. <내 생애…>에는 종합하기에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많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민규동의 난처함은 그가 <내 생애...일주일>에서 2005년 지금, 여기 남한의 서브얼턴(subaltern)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동시에 다루려 할 때 생겨난 것이다. 그는 카드깡에 시달리는 도시 빈민근로자(창후과 선애), 커밍아웃하지 못한 중년 게이(조 회장), 청년 실직자(태훈), 선정적인 TV 프로그램(성원, 그 역을 <S 다이어리>의 김수로가 연기한다), 청소년 팬덤 컬쳐(수경과 정훈), 멀티플렉스에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개봉관(곽 회장), 이혼 여성의 자립(유정, 그 역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가 연기한다), 결혼 적령기를 놓친 노총각(나 형사, 역시 그 역을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이 연기한다)을 한 자리에 끌어모은다. 그때 민규동의 알리바이는 그들이 모두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단 한 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에서 항상 다른 등장인물을 위해 자기 자신을 대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나는 민규동이 껴안은 등장인물들에게 충분히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민규동에게 이 인물들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잠재적인 (아니, 차라리 노골적이지 않은가?)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작동시키는 현실의 필연적 원리가 드라마의 우연으로 퇴각할 때 그 비선형적 계기들은 갑자기 이 인물들이 껴안은 모순을 작위적인 부름에 대한 대답으로 퇴행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하필이면’ 중에서 가장 신기한 ‘하필이면’은 이들이 예외없이 커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쩌면 딸일지도 모르는 진아의 ‘하늘나라에 간’ 엄마를 소개해서 성원의 빈 커플을 채우기 위해 하지원이 그의 아내로 특별출연한다. 그래서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성원을 위해 유일하게 플래시백을 동원한다. 그때 이 자리는 말 그대로 빌려간 책꽂이의 자리이다. 도서실에 대출되어 비어 있는 그 자리, 비어 있지만 채워진 자리. 그리고 이 커플들의 괴로움은 예외없이 남편-되기(혹은 남편-아버지-되기)의 장애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동일한 커플이다. 곽 회장은 오 여인의 상대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창후는 선애와 신혼 가정을 지켜내기에는 너무 가난한 남편이다. 조 사장은 아내에게는 그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그리고 태훈에게는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나 형사는 섹스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유정과 잘 되지 않는다. 정훈은 자살 소동 재연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침대에 묶여 있기 때문에 수경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어린 진아조차 지석과 커플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예외 없이 이들의 고통은 커플을 성공적으로 복원할 때 갑자기 모든 문제가 모두 해결된(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매듭은 커플이다.
그러나 서로 상이한 수준의 모순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려들 때 모순들 사이의 내적 거리는 일시에 말소된다. 그때 이 매듭은 현실의 서로 다른 토대 아래 발생한 모순들을 억지로 구부려서 그 안에 순환이 있는 것처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비 순환이다. 커플은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위한 가면이며, 그들을 안심시키는 대역이며, 결국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는 위로이다. 말 그대로 가족주의 예찬, 혹은 진보적인 문제틀을 부정하는 보수적인 해결. 그러므로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행복한 만큼, 정확히 그만큼 기괴하다.
커플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기괴한 해피엔딩
하지만 무엇을 담보로 하여? 여기에 난데없는 은총이 내려진다. <내 생애…>가 일요일에 시작하는 것은 하느님의 휴일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요일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수녀 서원을 앞둔 수경이 예수님 앞에서 그분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미수로 그쳐서 월요일에 병원에 실려온다). 이제 예수님과 한 약속은 깨졌고, 세상은 그분이 더이상 돌보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그 약속을 수행하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약속을 저버린 일요일에 시작해서 다시 약속을 맹세하는 토요일까지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내 생애…>가 마지막에 두 개의 간절한 기도로 이루어진 것은 이유가 있다. 수경과, 지하철에서 종이봉지를 뒤집어쓴 채 일초의 기도를 간절히 호소하는 창후.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더 큰 운명의 손에 내맡긴다. 수경이 기도할 때 갑자기 영화에서 처음으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 혼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때 그들은 사실 거짓 겸손을 떠는 것이다. 이미 운명이 자기 손에 있지 않은데, 그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때 그들이 생각에 잠기는 것은 마치 그들이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근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대답이 온다.
토요일 아침 정훈은 깨어나고, 조 사장 앞에 태훈이 돌아오고, 창후는 임신(중절에 실패)한 선애와 재회한 다음 곽 회장으로부터 갑자기 취업 제의 전화를 받는다. 오 여인은 곽 회장의 프러포즈에 응답하고, 유정은 지석을 무사히 돌려받는다. 그런 다음 유정은 나 형사와 함께 산다. 다소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토요일 밤, 유정과 나 형사가 침대에서 섹스를 하기 직전에 끝난다는 사실이다. 그날 낮, 아이의 유괴극에 말려들었던 유정은 그녀 자신이 아무리 어머니의 자리를 혐오한다 할지라도 그날 저녁 곧장 아이와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남자와의 자리로 달려갈 수 있을까? 그녀는 아들 지석의 아버지 조 회장이 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결국 재혼이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아이의 미래를 돌보지 않고, 나 형사와의 새로운 출발에 매달린다. 구태여 지석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와 살겠다는 결심의 쇼트를 포함시킨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지석이 유괴되어 있는 동안 조 사장은 태훈과 화해하느라 아이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영화는 겹겹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커플 이데올로기로 영화를 칭칭 동여맨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니체의 경구,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는 멋진 문장이긴 하지만 <내 생애…>와 아무 상관이 없다. 니체의 영원회귀(Die ewige Wiederkehr des Gleichen)는 해피엔딩의 목적론의 세계가 아니다. 그 누구도 자기가 던져진 그 조건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힘에의 의지의 한 예인 초인적 존재임을 긍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기도하고, 하소연하고, 그런 다음 처분을 기다린다. 행복은 바깥에서 오고, 근본적인 해결은 미루어진다. 영원히 남겨진 외부 조건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더 큰 질서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존재들. 기도는 정말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것이 기도로 인하여 강요된 선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반복하자면) 아니, 차라리 이렇게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숙명적 불행이 시작된 재수 없는 날을 기점으로, 즉 기독교가 시작된 첫날을 기점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왜 기독교 최후의 날로부터 계산하지 않은 것인가? 오늘부터” (니체, “반 그리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