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이야기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아내는 서울에서 배편으로 보낸 짐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큰 박스로 10여개가 넘는 양이었던 데다가 서울서 잠시 신혼생활을 하던 살림살이들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 짐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짐은 예정보다 몇주나 늦게 도착했고, 우린 그만큼의 기간 동안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짐을 받은 우리는,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짐을 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그 물건이란 바로 서울에서 몰던 차에 붙어 다니던 작은 토토로 인형이었다. 뭐 그 토토로 인형에 얽힌 어떤 사연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오히려 토토로 인형을 미국에서 산 차에 붙이고 다니면서 생겨난 일들이다.
팀 단위의 과제가 주로 주어지는 과정의 특성상, 나는 미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차를 함께 탈 일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각 출신 국가별로 내 차에 붙어 있는 토토로 인형에 대한 반응이 너무 달랐다는 사실이다. 우선 거의 100%에 가까운 미국인 친구들은 그 인형을 보고는 ‘이거 쥐냐?’(Is This a Rat?)라고 이야기하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아무리 내가 토토로에 대한 설명을 해줘도 대부분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 ‘아 또또로!’라며 반가운 기색을 보이리라는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지고, 약 반수 이상이 토토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는 경우엔 ‘마징가 제또’에서 시작해서 ‘슬라무 당끄’에 이르는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일본애니메이션을 일본인에게 설명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할 수 있는 토토로가, 오히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신기한 경험이다. 하지만 더 신기한 것은 10여년이 넘게 해적판 비디오를 통해 보고 또 보며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이웃집 토토로>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면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웃집 토토로>가 <반딧불의 묘>와 함께 동시상영될 작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영화계에는 숲 속의 괴물과 두 어린 소녀의 이야기가 성공하리라 믿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아니마지>의 편집장이었던 도시오 스즈키는 <이웃집 토토로>를 반드시 완성시키고 싶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획중이던 <반딧불의 묘>와 동시에 상영될 작품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제안했다. 이에 <반딧불의 묘>의 원작소설에 대한 판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애니메이션계로 진출을 원하던 신초사는 <반딧불의 묘>를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이웃집 토토로>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웃집 토토로>의 속편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일단 미야자키 하야오 스스로가 속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완결된 이야기를 더이상 끌고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 더구나 그에 따르면 사츠키와 메이는 그 이후로 토토로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엔딩 타이틀에 사츠키와 메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을 넣은 것도 바로 그런 상황을 의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계속 토토로와 만났다면 그들은 정상적인 어린이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야자키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런데 <메이와 고양이 버스>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한동안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메이와 고양이 버스>는 지브리 박물관에서만 상영될 예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10분짜리 단편으로, 올 가을 즈음에 공개될 것이라고 한다.
또다른 숨겨진 사실 하나는 바로 원래 <이웃집 토토로>가 기획될 당시엔, 주인공은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아니라 한 소녀였다는 점이다. 이는 <이웃집 토토로>의 포스터 중 하나에 등장하는 이름모를 소녀에 대한 의문 때문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 소녀는 사츠키와 메이 중간쯤에 해당하는 나이와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미야자키는 그 소녀를 주인공으로 작업하다가 마음을 바꿔 사츠키와 메이라는 자매를 탄생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자매가 한 원형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언니에게는 ‘5월’의 일본식 고어인 사츠키를, 동생에게는 영어식 발음인 메이를 붙여주었다는 사실. 이 밖에도 <이웃집 토토로>의 무대가 된 도쿄 근교의 도코로자와시가 ‘토토로의 집’이라는 지역보존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운동에 직접 그린 토토로의 그림을 제공하고 약 40억원을 희사해 개발이 예정되던 땅을 사들여 보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이웃집 토토로>의 개봉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러 번 복사되어 화질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의 <이웃집 토토로>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은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빗물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토토로의 미소와 고양이 버스의 신나는 질주를,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로 감상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이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자신의 연인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