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길강은 한번 기억하면 잊기 힘든 배우다. 그저 ‘남자’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하는 안길강은 담벼락도 뚫을 듯한 강한 눈빛과 자신의 귀에도 울림이 전해진다는 둔중한 목소리로 스크린에 깊게 팬 흔적을 남겨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분노밖에 가진 것이 없는 소년을 링으로 이끄는 <주먹이 운다>의 교도관 정도가 알려진 배역이었을까. 류승완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는데도 <야수와 미녀> 기자회견에서 굳이 자기의 필모그래피를 소개해야 했던 안길강은 “영화에서 조연은 혼자 카메라에 잡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사람들은 주인공만 보게 된다”고, 미스터 셀로판과도 같았던 기억의 부재를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주먹이 운다>에서 상환(류승범)의 배경에 머물던 안길강이 두 남자 사이의 여백을 건너 아버지와 비슷한 그림자를 드리워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건달과 형사 역이 사뭇 어울리는 골격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안길강은 어린 시절 주먹을 좀 쓰는 소년이었다. “동생 친구들이 내가 무서워서 집에 놀러오지를 못했다. 가출도 자주 했는데, 사실 집나가면 할 일도 없으면서(웃음), 아버지와 다투고 무작정 뛰쳐나가곤 했다. 공부하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어서. 외양간에서 자다가 경찰이 밥 사주고 차비 주면서 집에 들여보낸 적도 있다.” 민첩하게 몸을 쓰던 기억이 남았는지 그는 지금도 운동을 좋아하고 근육에 새겨지는 살아 있다는 느낌에 취하곤 한다. 그런 안길강에게 맡겨지는 배역도 대부분 남성성이 짙은 인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대문에서 청바지 장사를 하던 그는 3년만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97년엔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에도 ‘험악한 사내’로 출연하게 됐다. 안길강은 그가 착하게 생겼다는 박찬욱 감독의 독특한 시선 탓에 데드마스크를 쓰는 특수분장까지 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출연분량이 모두 잘렸고, 그 상처로 당분간 영화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영화가 <삼인조> 시절 “너무 열심히 하기에 언젠가는 잘될거라고 생각했던 연출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다.
그뒤 안길강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태극기 휘날리며> <생활의 발견> 등의 눈에 띄는 영화에 눈에 띄지 않는 인물로 출연해왔다. 그래도 그 영화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건 연극에서 다져온 훈련 덕분이었을 거다. “영화에서 조연은 캐릭터를 연구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연극은 다같이 모여 대본을 연구하고 인물을 분석하며 몇달을 보낸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데….” 강철을 부어 만든 것 같은 첫인상 아래에서 그 인상과는 모순된 분위기가 스며나오는 것도 “극단에 소속된 배우들끼리 연기를 해야 했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배역도 어울리도록 노력했던” 때문일까. <야수와 미녀>의 안길강은 조직을 무너뜨린 검사를 말로만 “담그자”고 우기는 심약한 조폭 최도식을 연기했는데, 겁에 질린 모습이 귀엽고 조금은 여자 같기도 하다. “도식은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동건(류승범)의 속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또한 그의 이면을 발견한 영화였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그의 눈동자가 슬퍼 보였다는 전수일 감독은 안길강을 차츰 상실에 파묻혀가는 영화감독으로 캐스팅하여 자전적인 모습을 불어넣었다. 이미 사라진 고향의 터를 헤매며 옛 집이 어디인지 묻는 그는 거친 인상이 아닌, 무너질 듯한 어깨의 선으로 슬픔을 전해준다.
안길강은 몇번은 더 형사나 건달의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게 될 것이다. <로망스> <야수> <짝패> 등이 그가 올해 찍었거나 찍고 있는 영화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대로 행복하다. 5년이나 10년 뒤의 일을 왜 미리 생각해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연기를 하고 운동을 하는 지금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런데도 결핍의 그림자가 배어 있는 그의 연기가, 이상하고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