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용서받지 못한 자> 주연 하정우·서정원
2005-11-10
글 : 임인택
사진 : 장철규
“군대폭력 무게감 유머로 덜어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열연한 서장원(앞쪽)과 하정우.

올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감독)가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학과생의 2천만원짜리 졸업작이란 점부터 관객을 놀래켰다. 거기에 2시간짜리 짧은 호흡으로 권력적 폭력의 노골성, 폭력이 이식되며 확대재생산되는 은밀성을 적확히 꿰뚫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달리, 웃음을 권하는 여유를 지켜낸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가장 하찮게 말밥에 올랐던 자식, 오빠, 동생, 친구, 또는 당신의 바로 그 군대 이야기이다.

이미 부산에서 만났던 윤 감독(한겨레 10월13일치 32면)도 말했듯, 혼자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 두 명의 뛰어난 신인 배우들이 바로 그 오빠, 동생, 친구처럼 분식되어 영화를 밀착시킨다. 군대 선·후임으로 만나게 되는 중학 동창, ‘태정’과 ‘승영’역의 하정우(26·본명 김성훈)와 서장원(22)을 지난 6일 만났다.

진짜 같다=이 영화는 대학생 또래끼리 만든 빈곤한 독립 영화나 다름없다. 그런데 군대 막사까지 섭외해 화면에 담아냈다. 육군 쪽에 가짜 시나리오를 건네 촬영 허락을 받아낸 재치보다 촬영 내내, 적극적으로 사병 노릇해가며 고생을 재미로 버텨낸 ‘청년다움’이 훨씬 살갑다. “유명 배우도 없죠. 머리도 짧으니까, 상황을 모르는 장교들마다 (사병인 줄 알고) 우리들 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을 해요. 부대에선 군기든 병사처럼 처신해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아예 경례를 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하하.”(정우) 지원사병들에게 빅맥을 사주고, 자신들은 세 끼 ‘짬밥’으로 버텨내며 한 겨울 군대 신을 마쳤다. 병역면제자인 서장원은 이미 촬영장에 있는 동안, 배역으로 몰입하는 동안 톡톡히 군역을 치른 셈. 이 영화의 리얼리티 지수이기도 하다.

본 것 같다=다들 연기 시작이 늦다. 고3 초입(장원)이나 끝물에 ‘막연히’ 진로를 바꿨다. 그야말로 ‘막연히’다. 현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경호원 역도 맡고 있는 하정우는 “남들은 그럴싸한 계기가 있지만 우린 그냥 가랑비 속옷 젖듯 한 것 같다”고 말한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한국 드라마의 중견배우인 김용건과 서인석이 그들의 아버지다. 그리고 둘은 중앙대 연극과의 선후배(97학번과 02학번)로 만난다. “학과에서 생활 잘 하면 군대에서도 생활 잘 한다”는 말이 공공연할 만큼, “예체능대의 문화가 군대의 것을 닮아”있었던 것도 이들의 군인 연기를 한 몫 거들지 않았을까.

기대 했겠나=“솔직히 이렇게까진 잘 될지 몰랐지만”(장원) 그렇다고 졸업작품 숙제 만들 듯 한 건 아니다. 하정우와 윤 감독은 이 영화를 기점 삼아 일찌감치 제작사(에이앤디 픽쳐스)까지 세워두며 가능성을 점쳤다. 공짜로 출연하면서도 쏟아낸 배우들의 품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태정 병장(하정우)이 허지훈 일병을 지분거릴 때나 유 병장이 여자 친구 앞에서 병영생활을 너절하게 늘어놓는 대목은 거의 애드리브(즉흥연기)다. 상황극을 하듯 찍었다. 웃음을 터트리며 주제의 지나친 무게를 덜되, 현실성을 높인다. 허 일병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이승영이 여관에서 처음 자살을 시도했던 대목, 연기가 겉돌자 서장원은 소주 1병을 마시고 실제 목을 졸라 혼절 전까지 가는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이들이 주인공이다=애초 시나리오의 태정은 하정우를 염두에 두고 그려졌다. 서로 모르던 때, 학창시절 하정우가 출연한 연극 <유리 동물원>을 보고서, 반 년 뒤 “형이랑 한 번 해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윤 감독이 하정우의 홈페이지에 남겼다. 그리고 일년 남짓 뒤, 영화는 크랭크인 됐다. 여린 승영 역도 고전 끝에, 영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서장원을 찾아낸 셈이다.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윤 감독은, 이들에게 빚졌다. “이 격찬들이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는 얘기 아니겠냐”며 그저 한발 물러서서 작품과 감독을 응원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특별언급상, 국제영화평론가상 등 올해 최다인 4개 부문 상을 받았고, 2006년 베를린,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됐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애태우는 건 당장 한국 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평가다. 하이퍼텍나다를 비롯한 전국 20개 스크린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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