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의 단편 <영창 이야기>가 나온 지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그뒤로도 군대는 쉽게 영화의 배경이 되지 않았고, 된다고 해도 관심을 끌지 못했고, 관심을 끌 만큼 좋은 작품이 부족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 소재를 가져와서는 지금 세간의 중심에 서 있다. 놀라운 신인감독이 출현했을 때마다 거치는 의식들은 이미 행할 만큼 다 행했다. <씨네21>은 <용서받지 못한 자>가 호응을 받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번의 기사 할애를 통해 공감을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지금 시점에서 이 신인감독에게 정작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찬사가 아니라, 호감 어린 비판이다. 또는 비판으로서의 지지다. 또는 글보다는 말이다. 이 인터뷰는 일종의 불운한 미래의 광경을 미리 경계하기 위해 청한 자리다. 좋은 재능의 한 감독이 초심을 잃고 나쁜 두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대중성과 작가성을 동시에 쥔 걸출한 신인감독이 자신의 고집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큰 만남의 이유다.
추신: 인터뷰가 끝난 뒤 한 가지 소식을 접했다. 육군은 가짜 시나리오로 군부대 촬영허가를 받은 윤종빈 감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했다. 윤 감독은 처벌받아야 한다면 받겠다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지만, 달리 찍을 방법이 없었다”고 이유를 말했다. 찍을 방법이 없지만, 꼭 찍어야 했던 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해서라도 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까? 부산에서 이 영화를 본 평단과 관객은 왜 열광했을까? 주의사항 한가지, 몇 가지 질문과 답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그냥 건너뛰어도 되지만, 영화를 보고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동기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거기에 대답하는 것은 인터뷰를 할 때 꼭 필요하면서도 고루한 첫 질문과 대답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내용이 별로 없다.
=제대하고 군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고참이 돼서 변했을 때나, 제대 뒤 나의 삶의 연장선상에 대해. 정확히 어떤 주제를 가졌다기보다는 군대 이야기를 한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화화되거나 포장된 것 이외에 군대 생활 자체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았고, 왜 없을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군대에 관한 진실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지 않았고. 망각하고 싶어하고, 자기 방식대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군대가기 이전에 내가 한국사회에 느꼈던 여러 가지 모순들, 도대체 왜 이런 거지 했던 의문들이 군대를 다녀오면서 이해가 됐던 거다.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적인 거대 개념이 영향을 끼치는 그 사이의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접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처음 편집 완성본은 170분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121분이다. 극장 배급이 결정된 뒤였나.
=배급 결정 전에 이미 줄였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찍어보니까 불필요한 장면이 있었고 호흡문제, 수위문제 등이 있어서 뺐다. 이 구조상에서 그렇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구조란 어떤 구조를 말하는 건가.
=처음에는 이런 걸 생각했다. 신문기사에 보면 ‘휴가 나온 군인 자살’, 하는 식의 기사가 나온다. 그런 걸 소재로 영화화했을 경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라는 자막이 뜬다. 말하자면, 실화가 아닌데도 그런 실제처럼 재현해낸 것 같은 영화의 느낌을 바랐다. 휴가 나온 군인이 노량진 같은 공간을 돌아다니는 하루의 일을 극화하지 않고 보여주고, 그 사이사이 군대 이야기가 끼어드는 식의….
-빠진 50여분에는 어떤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었나? 영화 속에 군기 반장 자리를 지난 태정의 말년 군 생활은 없다. 그리고 태정의 여자친구 지혜가 술집에서 승영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승영은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에요”, 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찾을 만한 장면도 영화 속에는 없다. 그래서 이런 상황과 대사의 근거가 빠진 장면 중 하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고참인 마수동과 태정은 20일 정도 차이밖에 안 나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태정의 말년을 보여주는 건 생각을 안 해봤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전역하는 태정이가 내무반에 혼자 남은 승영이와 뻘쭘하게 둘이 마주치는 장면이 있었지만 불필요해 보여서 뺐다. 그리고 술집에서 승영이가 한 대사는 특별히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고, 그냥 그 애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승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어떤 상황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애라서 좀 뜬금없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 지혜는 승영이를 더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러고보면 승영이는 속내가 잘 안 잡히는 친구다.
=기존 영화에서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멋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승영이처럼 누군가 사회 부조리나 편견에 저항할 때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때도 있다. 한국사회에 사는 지식인이 아닌 수많은 사람이 승영이 같은 사람을 볼 때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있고, 승영이에게 공감한다고 해서 승영이를 거기에 끼워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빠진 부분 중에 아쉬운 장면은 없나.
=태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거. 발레파킹 요원이었다.
-공감한다. 태정이 바깥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인지 좀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영화보면서 했다. 어쨌거나,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줬을 때 이미 단편과 장편 버전을 모두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단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게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35장이 넘었고, 30여신이 넘었다. 중편가량 되는 거였다. 캐스팅 다 되고 고치다보니 장편이 되어버린 거다.
-그럼 단편은 어떤 내용으로 만들려고 했나.
=좀더 장르적이었다. 더 긴장감이 있었다. 승영이가 태정이를 찾아와서 이야기하다가 승영이가 태정이를 린치해서 가둬놓고 고문하는 그런 장면들도 생각했는데, 피해와 가해자가 너무 나뉘고,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이어서 그만뒀다.
-승영이 여관 앞에서 태정에게 할 말이 있다고 문자를 보낼 때, 자꾸 태정에게 육체적으로 기대거나 만지려고 할 때, 군대 시절 승영이 태정에게 편지를 보낼 때, 승영이 태정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심어주고 있다. 여기에 동성애적 코드는 왜 필요하다고 판단했나? 그리고 꼭 필요했을까.
=그건 승영 캐릭터하고 관계가 있다. 영화에서 남자관계를 그릴 때, 특히나 한국영화에서는 의리 등으로 많이 나오는데, 친한 친구들하고의 내 경험을 보면, 여고생들이 느끼는 것 같은 서로에 대한 호감 등이 있다. 일단은 일방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또, 승영이 현실에서 갖는 어떤 절박함 때문에 그런 방식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봤다. 영화 내러티브상으로 보면 어차피 둘이 여관으로 가는 장면은 뺄 수 없었다. 주의를 돌리기 위한 트릭으로 쓴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생각한 남자들의 관계, 내러티브 요소, 승영이의 복잡한 관계 등의 미묘함 때문에 필요했다.
-(스포일러 주의) 지훈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장면 바로 다음 신, 즉 승영의 꿈장면에서 태정과 승영과 지훈이 셋이 사복을 입고 앉아 반말과 존대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판타지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는 뭔가 규정되어 있는 체계들이 한순간에 불가해함으로 끌려들어가는 영화적 재미가 있다. 한편으론, 이런 보석 같은 장면으로 왜 영화의 또 다른 맥락을 지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꿈장면을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그 순간에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공간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우걱우걱 뻥튀기 같은 걸 먹는 장면을 넣은 거고. 지훈이가 그때 승영이에게, “이승영 상병님은 정말 좋은 고참이십니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관객에게 싸하게 다가갔으면 싶었다. 그때 태정이는 옆에서 막 비웃고 있다.
-(스포일러 주의) 승영이는 결국 죽는다. 그리고 승영이의 죽음은 대속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승영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나 다 자살하는 건 아니지 않나. 승영의 죽음이라는 영화적 선택을 한 건데, 한편으로 승영이는 정말 죽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많이 고민했던 지점이다. 사실은 좀더 현실적이 되려면, 승영이 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엔딩으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냥 태정과 헤어지고 복귀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결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적인 취향보다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걸 더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좀더 슬픈, 비극 같은 걸로….
-영화 만든 뒤로 나쁜 소리는 별로 안 들어봤을 것 같다.
=아니다, 많이 들었다. 후반부가 지루하다. 좋은데 현실을 뛰어넘는 건 없냐, 뭐 그런…. “내가 그것밖에 안 되나봐요”, 그러고 말았다.
-이것도 나쁜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의 장점은 대중적이면서도 작가적인 양편의 날을 동시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신인감독치고는 자신의 표현을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건 좀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은 <용서받지 못한 자>가 상업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 관객이 봐야 하는 영화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전문가들만 공유하는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한국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외국에서만 호평받는다면 그게 뭐가 중요한가 하는 게 생각이다. 내가 위치한 지점이 거기인 것 같다. 더 현명해지면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도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첫 시도다.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못 갔다는 것이… 글쎄… 군대장면 찍으면서는 유머러스하게 찍어야겠다는 강박이 좀 있었다. 태정이와 승영이를 더 세밀하게 끌고갈 수 도 있었는데…. 하여튼, 초반부에 내가 선택한 것은 유머였던 거고.
-강박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유머라는 코드를 썼다는 말로 이해되는데, 만약 <용서받지 못한 자>를 뭔가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 비교해야 한다면, 이 영화는 디지털 장편영화라는 틀로 <마이 제너레이션>이나 <신성일의 행방불명>과 비교될 게 아니라, <그때 그 사람들>과 비교되어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어떤 부정적인 대상에 대해서 저항적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 때, 그 화석 같은 전형에 대해 저항할 때,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하다. 가령, <용서받지 못한 자>가 군대를 다룬다는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이 박정희를 다룬다는 것과 동일한 문제였을 것 같다. 임상수 감독이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의 모티브를 놓지 않고 사용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그 전형을 묘사하고자 하는 재현의 길에서 다시 전형의 자장 안에 빠지기 때문에 거리를 두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영화적 재현 노력이 오히려 이 영화가 추구한 무언가의 가치를 농담으로 소환시키고, 그 대상을 오히려 살아 있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감도 든다.
=유머를 코드로 하는 초반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말한 대로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후반부쪽으로 가면 달라지지 않나.
-(스포일러 주의) 꼭 유머를 말하는 건 아니다. 후반부에서 군대 체계를 벗어나는 방법도 승영의 죽음이라는 전형적인 방법을 선택한 건데, 전형에 대해서 전형으로 부딪칠 때 깨고자 했던 그 전형이 과연 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뭔가 다른 영화적인 장치, 예를 들면 아까 말했던 꿈장면 같은 게 더 있었다면….
=모르겠다. 결말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유머러스하게 가야겠다는 강박은 분명 있었다. 후반부쪽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여주자는 거였다. 그런데 호흡이 많이 다르더라. 그런 부분은 고민을 좀더 해야 할 것 같다. 내 숙제가 아닌가 싶다.
-응원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제 충무로의 기대주가 됐고, 앞으로 수없이 많은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거다. 그 과정에서 작가적인 고집이 실종되지 않았으면 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어차피 상업영화 안으로 들어온 거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한국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알겠다. 쉬운 방법은 있지만, 그건 싫은 거다. 내가 영화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거다. 끝까지 가보는 게 맞는 건가, 아닌가 그런 고민 하는 것 같다. 답답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어느 정도 인정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부담도 많이 된다. 자꾸 나를 한 단어로 규정지어서 이야기하려고 하고….
-차기작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만 되면 내년 안에라도 촬영에 들어가고 싶다. 초고를 빨리 써놓고 다시 고쳐가는 편이다. 개인적인 방식으로 끝까지 가보는 영화를 해야 하나, 일반에 호응할 수 있는 영화를 해야 하나 생각 중인데, 그게 어렵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