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영검> 개봉 앞두고 <삼국지: 용의 부활> 준비 중인 제작자 정태원
2005-11-25
글 : 박은영
사진 : 이혜정
“다음 순서는 한국감독 데리고 할리우드 가는 것이다”

<무영검>의 공식 시사가 있던 날인 11월14일, 태원엔터테인먼트는 10주년맞이 파티를 열었다. <무영검>의 투자·배급에 참여한 뉴라인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스타급 배우들이 참석한 이 자리는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성황을 이뤘다. 다음날, 뉴라인 관계자들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는 정태원 사장은 이내 홍콩에서 날아온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다. <무영검>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해외 배급 계약을 진행하는 와중에, 또 다른 프로젝트 <삼국지: 용의 부활>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성 복습차 주문했다는 만화 <삼국지> 전집을 펼쳐든 그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운영했던 치킨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는 고 고우영 화백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사업가 기질이 있었던 듯한 그는 이제 ‘글로벌 프로젝트’를 굴리는 프로듀서이자, 영화와 방송과 음악을 아우르는 종합문화 콘텐츠 제작소의 사령관이 돼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꾸만 몸집을 키워나가는 그의 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몇년 전에 <비천무>가 팔리는 것을 보고, 무협이야말로 세계적으로 통하는 장르라는 걸 알았다. <무영검>은 기획부터 세계시장을 목표로 했고, 그런 고민을 많이 반영했다. 열심히 했고 결과가 좋았다. 이제 초석을 다졌으니 점프하자, 거대 프로젝트로 덩치를 키우자는 생각이 있었다. 당장 미국 배우 스탭들과의 작업은 무리고, 중국 무협이라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소림축구> 개봉 무렵 주성치 통역을 해줬던 이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홍콩 프로듀서인 친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검토해달라는 거였다. <삼국지: 용의 부활>이라는 영화의 프리 프로덕션 계획이 담긴 DVD를 보았는데, 바로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예산 조달을 다 책임지겠으니,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2500만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어떤 가능성에 베팅한 것인가.

=원래 <삼국지>의 팬이고, 조자룡을 특히 좋아하는데, 조자룡의 시각에서 다시 쓴 <삼국지>라는 점이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 조자룡의 회상 속에서 유비, 관우, 장비, 여포 등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데다 전쟁을 왜 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이 담겨 있고, 한시를 곁들여 챕터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도 흥미롭다. 유덕화, 홍금보, 거여 등이 출연하기로 했고, 장쯔이의 캐스팅도 추진하고 있다. 무려 14년 동안 이 기획을 준비했다는 이인항 감독에 대한 믿음도 컸다. 미술을 전공했다는데, 영화의 처음과 끝, 하이라이트의 장면 설계가 빼어나더라. 태원에서 전체 제작비 2500만달러 중에서 1천만달러를 대고, 중국 차이나필름과 홍콩 유덕화의 영화사 등 중화권 영화사들에서 일부를 대고, 나머지는 할리우드에서 차차 조달할 계획이다. 내년 2월쯤 디테일이 나오고, 6월이면 촬영을 시작할 수 있다.

-추진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가 몇개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윤제균 감독이 진행하는 <소림 에이전트>에는 주성치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시장 그 이상이 목표이고, 스토리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에 솔깃해한다. 만에 하나 주성치 캐스팅이 여의치 않게 되면, 흑인 배우를 스타급으로 기용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 같다. 칸에서 발표했던 할리우드와의 또 다른 글로벌 프로젝트도 여전히 추진 중이지만,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무영검>의 일부 해외 판권 계약이 있었지만, 큰 계약은 확정짓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이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뉴라인 해외 마케팅 부사장 네스터 니에베스가 오늘 프린트를 갖고 홍콩으로 떠났다. 거기서 직접 세일즈를 하겠다고 하더라. 나는 11월 말에 일본에서 시사회를 열고, 일본 판매 계약을 결정지으려고 한다. 미국에는 다음주에 프린트를 보내기로 했다. 이제까지의 한국영화 미국 개봉 기록이 35개 스크린이니까, 그걸 넘어서는 건 기정사실이고, 뉴라인쪽에선 배급 규모를 세 자리 수로 보고 있다. 그렇게 시작해서 잘되면 더 늘려가자고까지 한다. 한국 언론에선 좋은 얘기 안 해주지만, 서구에선 정말 새롭다고 칭찬들이다. 배우들도, 스토리 전개 방식도, 액션 스타일도 중화권 것과 다르다며 좋아한다. 여무사 캐릭터로서의 윤소이가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해외 비즈니스를 하면서 어떤 프로젝트가 해외시장에서 어필할지에 대한 감을 얻었을 것 같다.

=자신감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야 할까. 할리우드영화에 비해 제작비는 덜 들이고, 효과는 그만큼 낼 수 있다고 확신하니까. 세계시장을 내다본다면, 로컬 배우와 감독으로는 아직 역부족이다. <쿵푸 허슬>이 미국 1천여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좋은 성적을 냈는데, 서구 관객에게 다가서는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성치가 대단한 일을 한 거다. 내 선택은 무협 액션이었다. <비천무>를 미라맥스에 팔았고, <무영검>을 뉴라인과 공동 제작했고, 이제 <삼국지>다. 다음 순서는 한국 감독을 데리고 할리우드로 나가는 것이다. 프로듀서가 먼저 나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고, 감독과 배우가 나가는 건 그 다음 일이다. 오우삼에게 테렌스 창이 있듯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는 한국 감독에게도 그런 버디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그거다. 할리우드에 빨리 자리를 잡아, 한국과 미국의 교량 역할을 하는 것. 무리하지 않을 거고, 운명적으로 들어오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올해 국내 흥행도 괜찮았고, 10주년을 맞아서 ‘공격적인 라인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는 최종 575만명이 들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잘됐다. 추석이라는 시기에 잘 맞는 팝콘무비였기 때문인 것 같다. 가족의 화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 단위로 보기도 괜찮았을 것이고. 현재 2편 출연진 거의 그대로 3편을 기획 중이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꽤 많다. 박기형 감독의 <폭력 서클>은 당장 12월에 크랭크인이다. 가수 출신의 아이돌 스타들로 캐스팅 중이고, 부산에서 촬영하게 될 것 같다. 촬영 중인 <맨발의 기봉씨>는 내년 설, <연리지>는 그 직후에 개봉할 거고, 이어서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 <누가 그녀와 잤을까> <가문의 영광3>를 연달아 크랭크인한다. 일본 만화 <생존>의 영화화도 정용기 감독이 맡아서 추진하고 있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김영찬 작가와 5년 전속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영찬 작가와는 <할렐루야>부터 작업했고, 호흡이 잘 맞는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눌 때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난다. 그래서 <가문의 위기…> 끝나고 나서 5년 전속 계약을 맺었다.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제작 이사로서, 내부에서 제작하는 한국영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각색하는 일을 관장하게 될 것이다. 주로 코미디에서 그 특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펙트럼DVD를 인수하는 등의 조직 개편도 했고, 사업체의 규모를 많이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스펙트럼DVD와 MGM의 케이블을 비롯해 음반 사업부도 갖추게 된다. 휘성, 빅마마, KCM 등의 소속사들을 인수 합병해서 음반 사업을 병행하고, 그 부서에서 배우 매니지먼트까지 아우르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일일이 관여하지 못할 것 같아, 각 부문에 전문 경영인을 두려고 한다.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음반 사업부를 두면, 영화 O.S.T를 직접 제작할 수 있고, 모바일쪽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또 MGM과 내년 초쯤 런칭하는 케이블 채널에선 한류와 관계된 상승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항간엔 대단한 야심가라고 알려져 있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난 10년은 외화를 수입하고 내수용 영화를 제작하고, 국내에서의 사업 기반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면, 앞으로는 더욱 글로벌한 프로젝트들을 펼쳐나갈 생각이다. 야심? 특별한 건 없다. 이미 해봤던 일들은 재미없어하는 편이다. 그냥 새로운 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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