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희한한 가족의 썰렁한 만찬, <가족의 탄생> 촬영현장
2005-11-28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고두심·문소리·엄태웅 주연의 <가족의 탄생> 촬영현장

꼭두새벽부터 춘천까지 내달린 취재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반찬 냄새가 진동하지만, 밥상을 둘러싼 분위기는 심상찮다. 젊은 남녀 한쌍과 중년 부인. 남매와 그 어머니인가 싶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밥을 먹는 건지 모래알을 씹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일관하는 두 여자, 미라(문소리)와 무신(고두심)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형철(엄태웅)이 “머 이래, 이거.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라며 정적을 깬다. 알고 보니 쌍으로 묶이는 것은 무신과 형철. 형철의 누나 미라는 5년 만에 집을 찾은 동생이 정체불명의 중년 여자, 무신을 데리고 온 뒤로 계속 저기압이다. 여기에 무신의 의붓딸 채현까지 합류한 상황이니, 제아무리 각별한 동생이 온갖 아양을 떤다 해도 기분이 나아질 리 없다. 머쓱해진 형철이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며 자리를 뜨면서 이 장면은 마무리된다. 언뜻 이들이 한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까마득해 보이지만, 제작진은 흔하고 익숙한 당위로서의 가족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귀띔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민규동 감독과 연출한 뒤 6년 만에 두 번째 장편 <가족의 탄생>을 찍고 있는 김태용 감독.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진정한 의미의 데뷔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워낙 소곤거리는 말투 탓에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지만, 배우에게 특정한 연기를 주문한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함께 확인하는 식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리허설한 뒤에 인물별로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어 같은 상황을 처음부터 찍어나가기에, 마당에서 마루 위로, 삼각대 위에서 조용규 촬영감독의 어깨 위로 카메라는 계속해서 자리를 옮긴다. 같은 대사를 하루종일 반복해야 하는 엄태웅이 가장 힘들 것 같지만, 매번 무표정하게 밥과 반찬을 입에 넣어야 하는 나머지 두 사람도 만만찮다. 그러고보니 별 생각없이 반찬그릇과 밥그릇을 오가는 듯한 문소리의 젓가락 움직임이 테이크마다 정확하게 같은 운동을 반복한다. 춘천 약수동 주택가의 빈집을 3개월 동안 대여하여 촬영을 진행 중인 <가족의 탄생>은 조만간 춘천 분량 촬영을 마친다.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등도 합류하게 될 촬영은 내년 1월 안에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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