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하늘이 이렇게 푸를리 없다>의 에모토 아키라
2005-11-28
글 : 김수경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간장선생 아카기가 메가박스에 나타났다. 지난 11월13일 저녁 일본 문화청이 주최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에 <하늘이 이렇게 푸를리 없다>를 출품한 감독 겸 배우 에모토 아키라를 상영장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영화제에는 그의 출연작 <방심은 금물>도 상영됐다. 녹차를 마시던 그는 “야마모토 신야 감독이 1979년에 만든 <기분을 내서 다시 한번>이라는 로망포르노를 통해 데뷔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하늘이 이렇게 푸를리 없다>는 그의 유일한 연출작. 그는 이 영화에 대해 “평소 친했던 소마이 신지 감독의 명령으로 만들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이 작품의 배우들은 대부분 그가 설립한 도쿄건전지 극단의 오래된 동료와 후배들. <아름다운 여름 키리시마>에 출연해 호평을 받은 아들 다스쿠에 대해 묻자 그는 여느 아버지처럼 수줍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웃는다.

1948년생인 에모토 아키라는 7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조연이다. 국내 팬들도 그의 얼굴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쉘 위 댄스>의 엉뚱한 사립탐정, <워터보이즈>의 유쾌한 트랜스젠더 술집주인 마마, <도플갱어>에서 주인공 하야사키를 괴롭히던 무라카미가 바로 에모토 아키라다. 도쿄 긴자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극단 도쿄건전지를 통해 본격적인 배우인생을 시작한다. 국내에서 회고전을 통해 소개된 소마이 신지의 <기관총과 세라복>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에모토 아키라의 상승세를 만들어준 연출자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 <변태가족>을 너무 재밌게 봐서 일단 만나자고 했다”라고 에모토 아키라는 수오 감독과의 처음 인연을 설명했다. 그는 이후 <으랏차차 스모부>의 교수 역과 <쉘 위 댄스>의 사립탐정 역을 통해 웃기면서도 페이소스를 잘 살려내는 조연배우로 자리잡는다. “촬영현장에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카리스마를 매 순간 느끼게 했던 <간장선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의 말처럼 <간장선생>은 에모토 아키라의 배우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된다. <우나기>의 조연에 불과했던 에모토 아키라를 이마무라 감독은 과감히 차기작의 주연으로 낙점했고 <간장선생> 이후 그는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는 아카기의 과장되고 따뜻한 캐릭터는 그에게는 최적의 무대였다.

에모토 아키라는 여관, 술집, 식당 주인처럼 단역에 가까운 역할이나 주된 이야기를 떠받치는 스토리의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와 함께 출연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플갱어>와 아오야마 신지의 <호숫가살인사건>처럼 상대적으로 긴 호흡으로 출연한 작품에서는 기묘한 공기와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에모토 아키라의 진가를 실감할 수 있다. <남자는 괴로워>로 유명한 아쓰미 기요시를 가장 존경한다는 그는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연기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덧붙여 “왜냐하면 그 배우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별로 좋은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일 듯 말 듯하는 연기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설경구가 출연한 드라마 <성덕태자>에도 참여했고, 사카모토 준지의 한·일 합작영화 <KT>와 재일동포 구수정 감독의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에도 출연한 그는 한국과 인연도 깊다. 이상일 감독의 신작 <스크랩 헤븐>과 <춤추는 대수사선4: 용의자 무로이 신지>에 출연하며 올해 일정을 마무리한 에모토 아키라는 내년에는 <NHK>의 대하사극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출연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다”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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