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크게 나왔죠? 그쵸? 내가 또 이럴 줄 알았어….” 인터뷰 사진을 찍는 내내 불안하고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이는 12월9일 개봉하는 <연애>(오석근 감독)의 여주인공 전미선(33)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방금 찍힌 사진 속 그의 얼굴에서는 ‘주먹만 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실제 얼굴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사진 기자의 탓이 아니다.
1989년 <토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꼬박 16년 동안 출연했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실물만큼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조명발, 화면발 기가 막히게 받는 또래 연기자들이 주연으로 승승장구할 때 그는 늘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었다. 그러다 서른을 훌쩍 넘긴 이제서야, 뒤늦은 연애와 함께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연애>의 어진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어진은 시체처럼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한 30대 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다. 어진의 일상은 좁쌀만한 이미테이션 보석 수백개를 손으로 일일이 붙여 머리핀을 만드는 그의 아르바이트처럼 고단하면서도 무미건조하다. 그러던 그는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드물게 괜찮은’ 남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다 만난 손님 민수(장현성)와도 연애 같은 감정을 나눈다.
“차승재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대표가 이 역을 제안했을 때, 내가 영화 한편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도망다녔어요.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뒤 어진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어진이는 나다, 딱 나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연애>에서 어진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2차까지 뛰는 유흥업소에 나가 뒤늦게나마 연애의 감정을 느끼게 된 주부 역을 맡았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처럼 모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맞는다. 그런 어진을 연기하기 위해 전미선도 적나라한 정사 장면과 두들겨 맞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또 어진은 연애의 감정을 느꼈던 민수로부터 ‘납득하기 힘든 부탁’을 받고, 눈물로 이를 받아들인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장면은 연기자에게도 감당하기 벅찬 경험이었을 것 같지만, 전미선은 이 모든 연기에 대해 “어진은 나와 같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황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진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하나하나는 저와 다르지만, 힘들고 화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은 제 모습 그대로예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화나는 상황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면서 깨달음도 얻는 거고, 성장하는 거고… 어진이나 저나.”
그런 그에게 연기보다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관객들이 이런 영화, 이런 연애에 대해 너무 답답해하지 않을까, 너무 올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전미선은 그런 걱정에 덧붙여 “하지만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냥 어진이라는 사람을 봐주시면… 울림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연애> 뒤 “연기에 대해 없던 욕심이 생겼고,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는 그는 현재 촬영중인 친구 안진우 감독의 영화 <잘 살아 보세>에 이어 “잔잔함 속의 기쁨이 있는, 느낌이 확 오는 시나리오를 선택해” 적극적인 연기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