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과 파시아가씨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배 위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이 하늘에 뜬 무지개를 배경으로 연출한 키스신이 등장한다. 합성도 아닌 유리판(!)에 그린 무지개를 카메라 앞에 두고 찍은 이 장면에서는 영화의 처연한 분위기와 함께 부족했던 그 당시의 작업 환경을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분위기가 있다.
정진우 감독의 음성해설에 의하면 이 ‘유리판 무지개’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번 더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마지막 장면이 난도질을 당하게 되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장면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된 뱃사람과 파시아가씨가 한 몸이 되면서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는 설정.
그런데 검열 측의 주장이란 것이 흑산도, 연평도 등 북한과 인접한 곳이 영화의 배경인지라 그 북쪽 하늘에 뜬 그 무지개는 ‘북한이 낙원이라는 의미’로 친북좌경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라나. 결국 그들로부터 ‘사회주의자’ 소리까지 들은 감독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시퀀스를 완결하지 못한 채 장면이 진행 중인 상태로 ‘끝’ 자막을 올리는 것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이런 웃지못할 일들은 ‘세상이 좋아진’ 지금도 종종 사람들의 유머감각을 농락하곤 한다. 돈을 절대로 갚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섬에 갇힌 채 힘들게 살아야 하는 파시아가씨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지만 제발 좀 변하거나 없어졌으면 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