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생이다. 내 십대 시절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80년대와 함께 하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그것은 곧, 팝 음악과 키치 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중첩투사된 경박한 화려함의 무지개 속에서 사춘기를 보냈음을 의미한다. 스크린 속의 연인이라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코팅 책받침의 물신(物神)부터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라는 것이다.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다이안 레인, 나스타샤 킨스키 따위의 이름들이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마치 문신처럼 뇌리에 각인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들은 ‘스크린 속 나의 연인’으로 간주된 적이 없었다. 피비 케이츠의 <파라다이스>도 브룩 쉴즈의 <푸른 산호초>도 소피 마르소의 <라 붐>도 보지 못했다는 표면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결코 닿을 수 없는 여인에 대한 비현실적인 짝사랑이 유치해 보였던 것이다. 또래의 여학생들과 분식집엘 가거나 왕성한 테스토스테론 분비의 요구에 굴복하여 이보희의 <무릎과 무릎 사이>와 오수비의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를 보는 식의 실용적인 노선이 차라리 남는 장사라는 게 나의 논리였다.
게다가, 대중음악 평론가로 호구지책하고 있는 이력이 말해주듯, 그 시절의 나를 더욱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음악이었다. 내 벽을 장식한 핀업 스타들의 이미지는 <스크린>과 <로드쇼>가 아니라 <월간팝송>과 <음악세계>가 제공한 것들이었고, 그 가장 빛나는 전시물은 올리비아 뉴튼 존이란 이름에 속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출연했던 <재너두>나 <그리스> 같은 영화들을 통해서도 연인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녀에 대한 느낌은 마치 사이렌에 대한 굴복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저 ‘스크린 속 나의 연인’이라는 표제어를 만족시키는 주인공을 만난 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제니퍼 코널리를 통해서였다. 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동양적 아름다움의 미덕마저 모조리 흡수한 듯한 신비로운 외모와 감정의 이입을 견고하게 만드는 또래집단의 실존적 동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가슴 속을 사정 없이 파고든 그 강력한 드릴의 정체는, 자신을 훔쳐보는 사내아이의 눈길을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청순한 동시에 잔인하기도 한 사춘기 소녀의 조숙함을 대변하는 화신으로서 그녀의 극적 존재감이 만들어낸 인상이었다.
그건 내게 일종의 전환점을 의미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제니퍼 코널리는 내가 처음으로 ‘비현실적인 짝사랑’이나 ‘여신에 대한 굴복’ 따위의 감정이 아닌 현실의 반영으로서 영화와 여배우를 만나게 된 시발점이었다. 어쩌면 가장 사춘기적인 방식으로 맞이한 내 사춘기의 종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오히려 더 괴롭히는 따위의 위악적 조숙함으로 유치함의 실상을 가리는 것이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제니퍼 코널리의 영화를 볼 때면, 그것이 번역 제목 수준만큼이나 한심한 <백마 타고 휘파람 불고>이건 아카데미 조연상을 거머쥔 호연의 <뷰티풀 마인드>이건 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그녀를 떠올리며 픽 하고 웃고 만다. 왠지 그녀가 내 사춘기의 부끄러운 기억들을 죄다 떠벌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얼굴 빨개지는 쑥스러움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