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인터뷰
2005-12-23
글 : 임인택
사진 : 강재훈 (한겨레 기자)
관객 울리고파 캐스팅 애먹어

“사실 원래 희곡만 본 상태에선 너무 어려웠어요. 잘 알면 흥미도 없었겠지만, 나이 마흔 넘어서 <리어왕> <햄릿>을 읽게 될 줄은 몰랐지요. ‘장생’이 맨 먼저 와닿더라고요. 내 안에 체화되지 않은 인물을 다룰 순 없고, 그래서 ‘장생’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기로 했죠.” 원작인 연극 <연극 이>에선 ‘문제적 인간’ 연산과 공길이 복판을 차지한다. 연극 연출가 김태웅은 “2000년 연극할 때도 영화 쪽에서 몇몇이 와서 하겠다고 했는데, 다 안되더라”며 “망할지 모른다, 하지 마라”고 했다.

어쨌건 <왕의 남자>는 장생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도 않았거니와 장생은 일면 이준익(46) 감독의 자화상이 된다. 기자시사회가 처음 있던 지난 13일, 이 감독은 영화 보는 줄곧 훌쩍였다. “세상과 자신을 1:1로 놓는 장생의 시각이나, 나락에서 천상으로 오르내린 그의 삶이 (내 것과) 닮아서”라고 말했다.

아기 우유값도 못 대는 가난한 미대생 출신으로 극장 간판을 그리기 위해 처음 충무로에 발을 들인 뒤,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의 제작자로 또는 <황산벌> <왕의 남자>의 감독으로 거듭나기까지 20여년 동안, “인생의 진폭을 심하게 겪은” 자신이 장생(감우성)에 비척비척 동요되듯 저마다 한판 죽음 같은 놀이를 치러내는 공길 또는 연산을, 혹은 처선을 통해 감독은 “관객을 울게 하고 싶다”고 전했다.

<황산벌>에 이어 다시 사극인 이유가 궁금했다. “전달하려는 주제를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에 앞서 감독은 기실 “서양 문법이나 수사로 얘기해야 이해가 되는 시대”에 깜냥 맞서는 듯 보인다. 현대인의 정서와 해학을 전통적 수사로 직조하면 영화는 “(국적불명의) 하이브리드가 아닌 빈티지(고급 중고품)”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캐스팅으로 애를 먹었다. 양동근과 장혁 등이 어긋났고, 감우성은 “차라리 공길이 아니냐”고 했다. 두 시간을 설득했다. 감우성은 제 얼굴에 흉터를 새기고 그럴싸한 어름(외줄타기)까지 직접 선보인다. “캐릭터가 깊어지고 두꺼워졌어요.” ‘공길’(이준기)도 계산했던 배우가 섭외되지 않아 오디션을 거쳤는데, 이 감독은 아예 감우성에게 공길 역을 디렉팅하도록 했다. 그 안에서 형제애도, 동성애도 발효된다. “아직도 미세한 감정선을 발견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정진영만 일찌감치 연산으로 ‘책봉’됐던 셈.

내쳐 스타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먼저 인정하고 존중해야죠. 대신 스타권력이 남용될 때 문화가 얄팍해질 수 있으니까 극복해야할 대상이 되는데, 그때 스타의 영향을 뛰어넘는 영화도 나오게 되는 겁니다.”

영화는 장생이 연출하는 소극(마당), 궁궐이 무대가 되는 중극, 연산이 연출하는 대극(세상)으로 확대되며 국면이 전환, 전복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짜뒀던 얼개다. 판은 점점 커지고 평등해지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가벗은 장생과 연산, 그리고 바로 관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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