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강원도를 떠나 부산으로 오다, <연애>의 오윤홍
2005-12-2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우리는 모두 그 여자의 음성을 알고 있지. 우리는 모두 그 여자의 음성을 알고 있지. 만약 그녀에 관한 합창이 있다면 첫 소절은 그렇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나른한 비음 같기도 하고, 물에 잠긴 쇳소리 같기도 한 그 음성은 잠결에 들어도 알 만한 것이다. 그 음성은 자신의 말처럼 어떤 “청승끼”의 캐릭터를 살아 있게 했다. “그 청승끼가 극대화돼서 <강원도의 힘>의 지숙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때 지숙은 친숙하기만 했다. 그녀도, 우리도, 힘든 건 그 다음이었는데, 지숙으로 사는 것보다 지숙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지숙을 기억하는 것보다 지숙을 잊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녀에 대해 “건조하고 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주인공 역을 제안받았을 때 오윤홍이 망설였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된 차승재 대표에게 연락이 와서 <연애>의 지혜를 하게 된 거니까, 그건 묵혀놨던 좋은 인연이 된 셈이다.

‘저를 믿으세요, 당신을 믿을게요’, <연애>의 오석근 감독과는 그런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애초에 코미디언 여배우에게 맡기려 했을 정도로 활달하고 직설적인 부산 유흥업소 아가씨 지혜 역할을 정말 오윤홍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연출진의 숨은 고민이었고, “과연 여기에 내 정서를 넣을 수 있을까”했던 것이 오윤홍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고민의 벽을 트기 위해 촬영장 바깥에서도 지혜처럼 보이려 노력했고, 회식 자리 노래방에 가서도 청승맞은 노래는 한 곡조도 부르지 않았다. 촬영을 시작한 지 3일쯤 지나니, 누구도 그런 걱정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누가 그러대요, 내숭 한 시간이라고. 사람 마음에 문이 10개라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천천히 열리는데, 오윤홍은 1개만 열리면, 나머지 문이 한꺼번에 열리는 스타일이래요. 처음에만 깍쟁이처럼 보이지, 저 깍쟁이 아니에요. 스크린에서도 연기하지 않고 그냥 살려고 해요. 보편성을 좀더 가지면서….” 그래서 비록 조연이지만 <연애>의 지혜는 변화된 다른 존재로, 더 보편성을 띤 다른 인물로 살고 또 살고 싶은 그녀의 새 이름이다.

오윤홍이 싸온 친절한 조각 케이크 꾸러미. 그 케이크를 둘러싸고 앉아 맛있게 먹으며 한참을 더 이야기하다보니 이 여자의 음성에서 온기를 느낀다. 건조하고, 쿨하기만 하다고? 따뜻하고 촉촉하기도 한데 뭘. 그녀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고 이면이 보일 때, 영화를 보고 그 확신이 들 때, 누군가 그녀에 관한 합창의 마지막 소절을 잘 지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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