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연애는 미친 짓이다”라지만, 결말은 “연애는 상상만으로도 좋은 것”이라는 연애 옹호론으로 끝맺는다. 대단한 역설이다. 그러나 <연애>의 주제는 연애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제목을 정확히 다시 붙이면 “연애와 매매춘을 혼동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가 되며, 이 글의 논지는 “아니다, 연애와 매매춘을 혼동하는 건 유구한 남성판타지이다”다.
화대+소개비⇔성행위+연애판타지
성매매는 성서비스를 구매(판매)하고 대금을 지불하는(받는) 경제행위다. 그러나 교환이 단순치 않다. 대금이 ‘화대+소개비’로 나뉘며, 대개 ‘화대<소개비’란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성서비스가 ‘직접적 성행위+연애판타지’로 나뉘며 본질적으로 ‘성행위<판타지’라는 사실은 대개 간과된다.
‘연애판타지’란, 구매자 입장에서 비록 돈을 내고 제공받는 서비스이지만, 잠시나마 마치 진짜 연애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①이 여자도 내게 도도하게 구는 다른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②돈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원하는 여자와 섹스를 즐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야’ 성공적인 구매다. 판매자는 연애를 상연(上演)함으로써 구매자가 연애의 모사품으로 느끼게끔 해야 한다(가령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이 ‘오빠’를 부를 때, 그녀는 정말 오빠를 갈망하는 것처럼 상연한다. 물론 그녀는 서비스였을 뿐인데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판타지 효과가 극대화된 경우다).
‘연애판타지’를 구성하는 두 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①그녀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여자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 강조되기 위하여 ‘그녀들은(부모 약값,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매매춘을 하게 된 가엾은 여성이다’.
②이 관계도 인간적 교감이 된다고 믿기 위해 ‘그녀들도 이 관계에서 연애감정을 느끼거나 원하고 있다’(‘고향이 어디냐,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냐’부터 ‘너도 즐기고 있지?’까지).
<연애>는 두 가지 판타지의 결정판이다. 어차피 유부녀이니 부모, 오빠 대신 무능한 남편 만나 애들 학비나 벌려고… 쯤 되겠다. 일찌감치 시집가서 아줌마이긴 해도 여전히 참하고 숙맥인 구석도 있고(음… 중고라도 새것이나 마찬가지? 이 대목을 강조하기 위해 남편과의 섹스는 <주먹이 운다>식 파행으로도 묘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자발적으로 손님에게 사랑을 느끼고 싶어한다. 전화방에서 알게 된 남자와 ‘진실한 대화’를 나누며, 보도방에서 만난 남자에게 설렘을 느끼고(어느 순간부터 돈도 안 받고) 전화통화하고 섹스한다.
그녀는 판매자이면서 연애와 성매매를 혼동한다. 첫 손님에게 ‘당신이랑 바람나서 여기 온 것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스스로 혼동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구매자에게 노출시킨 것이다. 이로써 연애판타지가 망가진 구매자는 격분한다. 2:1 섹스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연애라 믿었기에 자아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지만, 끝까지 연애인 양 회상하며 전화방 남자와 다정스레 ‘연애란 무엇인가’ 담소한다. 이쯤 되면 매매춘과 연애를 혼동하는 것이 과연 그녀인가, 감독인가 의아해진다.
명작이라는 <지중해>도 매매춘을 자발적 성행위와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다. 전쟁 중 고립된 외국 군인들이 섬 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냈다는 이 영화엔 군인들의 성적 긴장을 해소키 위한 장치로 창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스스로 창녀라 밝히고 군인들은 순번을 짜 그녀와 3년간 윤락하다 그중 한명이 그녀와 결혼한다. 그런데 그들에겐 군표도, 외화도 없으며, 지역화폐를 벌어 지불하는 걸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녀는 왜 성노동을 하는가? 이는 매매춘을 자발적 성행위로, 창녀를 직업인이 아닌 천성/신분(엄마도 창녀였다)으로 보는 시각이 개입된 것이다. 즉, 그녀가 창녀란 사실이, ‘돈을 받으면 성서비스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남자와 잘 수 있고, 자고 싶어하는 여자’로 해석되는 것이다. 하물며 ‘명작’도 이러할진대, <연애>가 성매매와 연애를 혼동한다 한들, 뭘 그리 놀라나∼? 유구한 남성판타지야∼ 가실 줄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