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의 <킹콩>이 만들어낸 최고의 경이로움 중 하나는, 나오미 왓츠다. 특수효과를 썼다고 해도 믿길 만큼 <킹콩>의 나오미 왓츠는 그녀의 모든 연기 생애를 통틀어 <킹콩>에서 가장 아름답다. 인형 같다. 1968년생, 서른일곱의 여배우는 그녀와 동향 출신이자 절친한 친구 니콜 키드먼의 전성기마저 떠오르게 할 정도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보통 여배우들은 꽃다운 미모와 탱탱한 육체로 시선을 모아 스타가 되었다가 ‘저는 연기력도 되는 배우예요’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미모가 소용없는(혹은 미모가 망가져야 의미있는) 캐릭터로 평단과 오스카의 지지를 꿰차며 급수를 높이는 법.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이런 말도 썼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타고 싶은가? 팁 하나 알려주지. 못생겨져라.” 그리고 예로서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과 <몬스터 볼>의 할리 베리를 언급했다.
나오미 왓츠는 반대다. 친구 키드먼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탱크걸>의 젯트 걸을 비롯해 <옥수수밭의 아이들4> <유니콘 킬러 사냥하기> 같은 영화의 조연으로 헤매던 그녀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대중은 빼고) 언론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이미 서른셋이었다. 마론인형같이 생긴 고향 친구마저 2년 전에 <아이즈 와이드 셧>으로 연기를 하겠다고 덤볐으니, 왓츠라고 별수 있었을까. 그녀는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개봉한 그해에, 12년지기 친구 존 커랜이 쓰고 연출한 <엘리 파커>에 주연을 맡으면서 난생처음 제작을 겸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한 무명 여배우가 오디션을 전전하다 결국 직업을 포기한다는 쓸쓸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엘리 파커>는 선댄스에서 호평받았으나 커랜과 왓츠의 유명세가 없어 곧 잊혀졌다.
이듬해 <링>의 흥행으로 인지도를 얻은 왓츠는 <링2> <프렌치 아메리칸> <네드 켈리>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기획상품 제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21그램> <우리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 같은 깊고 단단한 인디영화를 계속 찍었다. 왓츠는 <21그램>에서 한순간의 사고로 두딸과 남편을 잃고 혼란에 빠진 여자를 연기해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뉴욕타임스>는 <21그램>의 나오미 왓츠를 침 튀기도록 칭찬하면서 기사의 말미를 이렇게 끝냈다. “시쳇말로 그녀는, 끔찍하게 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은 신비한 성질을 가졌다. 행복한 순간에는 예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는 아름답다.” 테렌스 래퍼티의 이 표현은 사실 매우 정확하다. 나오미 왓츠 같은 성격파 여배우에 관한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끔찍하게 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왓츠의 지적인 취향인 한편, 30대 중반 체면에 린제이 로한처럼 깜찍한 척할 수는 없는 여배우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 기나긴 세월을 나오미 왓츠는 한방에 보상받았다. 린제이 로한, 아니 리즈 위더스푼 정도의 깜찍함도 떨어볼 수 없는 나이에 주연급이 되어 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평가받아온 여배우의 절정의 아름다움이 <킹콩>에서 번쩍번쩍 빛난다. 물론 그 아름다운 자태는 왓츠의 연기력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디지털 캐릭터 콩의 표정과 행동 데이터 소스를 제공하는 앤디 서키스가 촬영현장에서 함께하는 동안, 왓츠는 검은 고무옷을 뒤집어쓰고 고릴라 흉내를 내는 동료 배우의 괴상한 꼴이 아닌 콩의 사랑스러움을 보았다고 했다. 나중엔 서키스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는 왓츠를, 피터 잭슨 감독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그 순간에 필요한 그 역할의 핵심을 담는다. 그 순간에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진짜처럼 믿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니콜 키드먼이 질투할 만큼 곱게 찍힌 얼굴에 진실한 내면 연기까지 어렸으니 무엇이 더 필요하랴. 나오미 왓츠는 이제 부러울 것이 없는 여배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