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를 보고 나서 2년 전 <알포인트> 개봉을 앞두고 배우 감우성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딱 한번 만났지만 그는 기자가 이야기를 나눠본 배우 가운데 가장 ‘특이한’ 배우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특히나 상당기간 ‘몰입’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은 어쩔 수 없이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어려울 텐데 그는 칭찬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작품과 특수관계가 없는 관객처럼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개봉 전 인터뷰라는 게 기실 홍보활동의 일환인데 그는 홍보에 별 뜻이 없어보였다. 낯설었지만 신선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많은 부연설명을 하지 않는 그는 해외 촬영 도중 빈사상태로 한국에 실려왔던 일이 기사화될 정도로 모질었던 고생에 대해서도 “고생이야 제작진 모두가 한 건데”라고 짧게 끊었다. 이 지점에서는 약간 감동까지 받았다. “만약 당신의 누이가 윤간을 당하고 눈알이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고 상상해봐라”는 비유로 배우가 감내해야 하는 극도로 피곤한 정신적 노동에 대해 언급했던 로버트 드니로의 말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영하 몇도의 추위에서 찬물에 들어가 몇시간동안 떨었다”식의 몸 고생에 대한 ‘자화자찬’이나 감독들의 배우 칭찬을 들을 때마다 “1억원 주시면 저는 두달동안 얼음물로 출근하겠어요”라고 늘 대꾸하고 싶었던 터라 그랬을까.
아무튼 감우성은 분명 예민하고 열정을 지닌 연기자이지만 자신의 열정까지도 정확히 측량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배우다. ‘뜬금없는’ 사극의, 그것도 광대 장생역을 제안받고(<간 큰 가족>의 뽀글 파마도 의외지만 감우성과 사극의 광대도 어지간히 엮이지 않는 조합 아닌가) 이준익 감독에게 자신이 왜 장생이어야 하는지 설득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기사를 보고는 ‘감우성답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냉정함이라는 게 일정 정도의 자기최면을 요구받는 배우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법하다. <알포인트>를 비롯해 <거미숲>, <간 큰 가족> <왕의 남자>에 이르기까지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지만 ‘감우성의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은 건 어쩌면 그의 연기가 정교한 계산과 준비된 예민함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반면 작품 자체가 지닌 완성도나 무게를 압도하는 배우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그가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이른바 톱이라고 꼽히는 배우들이 지난 몇몇 영화에서 ‘감정 누수’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런 ‘넘침’에 대한 경계가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물론 감우성이 최고의 연기력을 지닌 배우는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 더 “진화”해야 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배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최고가 되더라도 ‘감우성의 영화’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을 것같다. 그래서 남우주연상을 못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비판에 능한 ‘냉정한’ 배우로 남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