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임창정
2006-01-05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배우 임창정

내가 임창정을 기억하는 건 <비트>(1997)부터이다. “13대 1로 쪼개서…”라며 큰소리 떵떵 치다 ‘뒤지게’ 두들겨 맞던 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라면가게 차리고 환하게 짓던 미소, 가게 지켜야 된다며 조폭에게 돈을 주고 흘리던 눈물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았다. <비트>엔 정우성, 고소영 같이 ‘존나~ 멋있는’ 인간들이 많이 나왔지만, 전부 만화 주인공들 같았고, 오직 임창정만이 ‘실사’ 같았다. 살려고 허풍도 치고 때로 비굴해지지만, 자기 욕망에 솔직한 ‘진짜 인간’ 말이다.

<행복한 장의사>(1999)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특히 임창정이 조등(弔燈)을 들고 새벽 논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장면은 가장 행복하게 꼽는 장면이다. 마치 그의 자전거를 같이 타고 새벽 논두렁길을 달리는 듯 상쾌한 바람이 코끝에 스치는 듯하다. 그는 망나니처럼 굴 때도 극악함이 도를 넘지 않는다. 근본은 착한 사람 같다는 믿음이 이상하게도 그의 눈빛에 전해온다. 그래서인지 <행복한 장의사> 중 껄렁한 놈팡이에서 죽음의 의미를 터득해가는 장의사로 거듭날 때도 그의 눈빛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설득이 되고, <시실리 2km>에선 조폭이면서도 처녀귀신 말을 들어주는 다정한 그가 과히 이상치 않다.

사랑영화 속 그는 무척 겸손해 보인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에서 언강생심 톱스타를 사랑하는 청년인 그는, 조심조심 그녀에 대한 마음을 내보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 맘 때였나, 과자 시에프에서 임창정이 벤치에 앉아 “나, 그거 아주 잘 먹는데…”하며 약간 웃으며 몸을 꼬는 광고가 있었다. 임창정이 부르는 애절한 사랑 노래와 더불어, 난 귀엽고 착해 보이는 그를 정말 꼭 안아 주고 싶었다.

사랑 영화 속 ‘귀엽고 착해 보이는 임창정’의 결정적 이미지는 역시 <색즉시공>(2002)이다. 정액 토스트를 들고 천진하게 뛰어가는 그는 흡사 <톰과 제리>의 표정을 닮았다. 다리를 쩍 벌리는 하지원을 보고 밥알을 튀기고, “좋아?” 라는 말에, 엉겁결에 웃으며 끄덕이다 봉변당하는 그이지만, 진정한 압권은 따로 있다. 하지원을 여관방에 눕혀 놓고 사정사정해서 반지 팔고, 기숙사에서 ‘브루스타’ 랑 ‘즉석 미역국’ 이랑 가져와서 여관방에서 차력쇼로 마늘 까며 미역국 끓여 먹이던 그! 나는 살다 살다 이렇게 눈물나는 코미디는 처음 보았다. 하지원은 임창정을 사랑하지 않지만, 그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과시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필요로 할 때 최선의 사랑과 배려를 그녀에게 준다. 그 후로도 그는 그녀와 수줍게 만날 뿐 그녀에게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귀엽고 착해 보이는데다, 웃기기까지 하다니, 그는 완전 내 스타일이야~.

영화평론가 황진미

그에겐 생활의 냄새가 풀풀 난다. <위대한 유산>(2003)에서 쭈그려 앉아 손빨래를 하는 그의 엉덩이 흔들림이 아줌마의 그것처럼 리얼하기에 “너…똥쌌어” 같은 대사의 울림이 남다르고, <파송송 계란탁>(2005)에서 “어 얘 순진한 척하는 것 좀 봐” 같은 대사가 자연스럽기에 “낭만 고양이~”가 더욱 구슬프다. 그의 팍팍한 삶의 냄새 때문인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에 무수한 커플들이 나왔지만, 내 마음을 울린 건 오직 임창정 뿐이었다. 밤낮 없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풀죽은 듯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겐 “넌 소시지, 난 단무지, 우리 한 떨기의 김밥이 되자”며 포근히 안고, 지하철에서 “제 아내를 위해 단 1초만이라도 기도해 달라”고 울 땐, 좀 오버스러웠지만 내 남편이 그렇게 우는 양 애틋했다. 신기루 같은 비장미를 날리며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남자가 아니라, 가장 현실감 있는 삶의 의지로 나를 꼭 안으며 수줍은 듯 웃을 것 같은 남자 임창정, 스크린 속 ‘나의 연인’이여. “오 너를 느낄 때~ 난 살아있어~ 너는 내 행복의~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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