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카드>의 김유진 감독과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이미 정진영을 캐스팅해두었다. 그들은 모두 “믿는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믿는다, 그를 믿는다. 파고들자면 숱한 파동으로 쪼개어질 수도 있을 답이었지만 묻는다는 게 구차한 듯도 싶었다. 믿음에 단서를 달아보아야 무엇하겠는가. 누군가 믿는 배우라는 사실만 마음에 새기고선, 10년 전에 영화배우로 데뷔했지만, 왠지 그보다 오래 있어온 듯한 정진영을 만나러갔다.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없이 혼자 다니는 정진영은 소박한 차림새였고, 몇 차례 인터뷰를 하며 단골이 되었다는 카페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친근했다. 냉정하고 지적인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이미지도, 마음을 붙일 데가 없어 홀로 헤매는 연산의 추운 고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왕의 남자>와 연산군을 두고 이야기하는 그는 여전히 매서운 데가 있었다. 정진영이 다시 친절한 아저씨의 모습이 된 건 인터뷰가 거의 끝나간다고 판단하고선 맥주 몇병을 시키고 나서였다.
-장생 역으로 결정되었던 장혁이 갑자기 군대에 가면서 <왕의 남자> 촬영이 많이 늦어졌다. 이준익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없었어도 정진영은 기다려주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1년을 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지난해까지는 시간이 쭉쭉 흘러갔다. 스크린쿼터 공부도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까진 올해 1월이면 촬영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계속 늦어지니까 미치겠더라. 이준익 감독도 지난해에 전화를 걸어 아무 영화나 하라고 했다. 캐스팅도 안되고 관둘래, 신경질을 내면서. 왜 그러는지 물으니까 미안해서 그런다고 했다. 그럼 미안하다고 하지 왜 화를 내냐고 말해주었다. (웃음)
-시나리오를 받으면 열심히 공부하는 배우라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이준익 감독이 공부를 못하게 했다던데 불안하지 않았나.
=한참을 기다리다가 <왕의 남자>가 6월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나마 내가 나오는 장면은 7월부터였다. (웃음) 내가 원래 촬영이 없어도 촬영현장에 자주 간다. 그런데 이번엔 잡생각이 날까봐 가지 않았다. 혼자 윈난성으로 여행가면서도 시나리오는 두고 갔다. 공부를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연산은 논리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안되는 인물이었다. <왕의 남자>는 연산이 예상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해야 앞으로 나가는 영화다. 감성으로 대해야 하는데 그게 더 어렵고 불안했다. 연기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고 현장에서 찾거나 바꾸어야 했다. 어떻게 찍을지 모르고 들어간 장면도 있었는데, 재미있더라니까. 나도 완성된 영화를 볼 때까지 내 연기를 몰랐다.
-연산군은 복잡한 인물이어서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분석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지는 않았나.
=내가 연출부 출신이라 영화를 자꾸 이성적으로 보게 된다. 영화가 가려는 길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선 안되는 거지. 지금까지 해온 역도 대부분 그랬다. 정확하게 연기해서 영화를 밀어주는 역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부하면 감정이 깎여 나올 것 같았다. <왕의 남자>는 연산의 일대기가 아니라 광대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광대로서의 연산을 생각하라 했지만, 그마저도 생각을 안했다. <왕의 남자>가 열한 번째 영화인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런 식으로 연기한 게 처음이라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겠다. 광대들의 놀이판에 뛰어든 연산이 익선관을 내밀면서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억양도 뜻밖이었는데.
=그런 건 연습할 수도 없다. 꾸민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연산이 갖는 느낌을 나도 가져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감정이 연산과 비슷하게 되어 답답하고 우울했다. 나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라 영화를 찍으면서 눈치를 본다. <달마야 놀자>를 찍을 때는 스님들 눈치를 봤고 <와일드 카드>를 찍을 때는 형사들 눈치를 봤다. <황산벌>은 김해 김씨 문중 눈치를 봤다. 그런데 연산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더라.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었던 거다.
-그렇게 외로울 때 공길이 나타나니 위로가 되던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산은 공길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공길을 만나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산이 녹수 치마폭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때 이미 연산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다음부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를 몰라서 감독에게 의지해서 갔다. 참 이상한 사람이지? 왕이 엄마젖 좀 못 먹었다고 말이야, 적당히 타협했으면 잘 살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다.
-연산이 공길을 머리로 툭툭 건드리고 입을 맞추는 장면은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연기였다고 들었다.
=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배우다. 후배들에게도 대사를 백번은 해야 나오지 그냥 나오냐고 했었다. 그래서 불안해하며 촬영장에 갔는데 첫 장면이 연회였다. 처음 이틀은 감독이 그냥 뒤에 앉아 있으라고 했고, 사흘째 나를 찍는데, 어떻게 웃어야 할지 몰랐다. 시나리오에는 파안대소라고만 써 있었고. 그런데 웃음이 터져나오더니 그때부터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맞추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도 없었는데 느낌이 오기에 감독에게도 얘기를 안했다. 말하면 가짜가 될 것 같아서. 키스도 할까 말까 결정을 못했다가 머리를 박으니까 키스가 되더라고.
-연산으로 분장한 모습이 잘 어울렸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준수해 보이던데.
=감독이 왕의 얼굴이 나와야 한다고 신경을 썼다. 그 얼굴 가지곤 안되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피부과까지 다녔는데 병원비는 안 주더라고. (웃음) 두 시간이나 공들여 분장한 탓도 있을 거다. 보통 수염을 라텍스로 붙이지만 촬영감독이 어긋나 보인다고 해서 한올 한올 심었다.
-연기가 안정되어 있어서 그 이상으로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평이 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정은 됐지, 안정될 수밖에 없지, 데뷔를 늦은 나이에 했으니까. (웃음) 나는 연출부를 하다가 배우가 됐기 때문에 아직도 콤플렉스가 있다. 사람이 뭔가를 하면 일로매진(一路邁進)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솔직히 어쩌다 보니 배우가 된 거니까. 물론 먹고살려고 연기를 시작했고 그 다음엔 악을 쓰며 했지만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다행히 영화 하나 할 때마다 조금씩 늘더라고. <왕의 남자>를 하면서 이제 좀 배우가 된 것 같았고 느낌으로 연기가 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배우는 감성이 엄청나게 중요한데 이번엔 감성 100%로 연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가 좋다. 먹고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좋아졌다.
-평소 감성적인 편인가.
=나 술 먹는 거 보면 알잖아. (웃음) 감성이 있는데 이십대 이후 감성을 죽이는 훈련을 해온 것 같다.
-서울대 총연극회에서 활동을 했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었나.
=고3 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희망이 영화감독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잉마르 베리만이 스웨덴 왕립극장장 아니었나. 연극이 영화의 기본이라는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연극반에 들어간 건데, 그때 연극반이 어디 예술을 하나. (웃음) 선배들은 다른 일을 하니까 1, 2학년은 다 배우를 했다. 나는 연출을 하고 싶었지만 마침 노동자문화운동연합 분과로 극단 한강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다시 배우부터 한 거지.
-서른이 넘어 <초록물고기> 연출부에 들어간 건 그 때문이었나.
=언제부터인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여러 가지가 겹쳐서 그랬는데 90년대 초반 이데올로기 집단 사이의 문제가 있었고 개인사도 있었다. 연애를 둘러싼 개인사가. (웃음) 그러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준비하고 있던 황규덕 감독을 만났다. 처음엔 배우로 만났는데 이야기하다가 황규덕 감독이 너 연출하라고 하더라. 파리에 있는 영화학교로 오라고 해서 전세금 뺄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데 영화가 엎어진 거야. 그 다음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균동 감독이 너는 나이를 먹었으니 현장경험이 중요하다면서 <초록물고기> 연출부로 추천해주었다. 그때 이창동 감독이 갑자기 배우가 없어진 막동이 작은형 역할을 맡겼다. 나는 거저니까. 그래도 연출부끼리는 영화 너무 싸게 찍는 거 아니냐며 꼭 개런티 받아와 술 사라고 해서 돈도 좀 받았다. (웃음)
-배우로 출연했다고는 해도 작은 역이었는데 인생이 바뀌었다. 연출의 꿈은 언제 접은 건가.
=인생이란 게 이상해서 다시 배우를 하게 됐다. <초록물고기> 끝나고 장편 시나리오를 써서 공모전에 내기도 했는데 떨어졌다. 그때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끝냈는데,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안 좋은 의미에서 소녀가 하나 앉아 있더라고. 세상을 굉장히 나쁘게 보는 소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말이 안되는 거야. 충무로에서 영화를 하겠다는 건 충무로 관객, 그러니까 보통 사람에게 보여주는 영화를 하겠다는 건데, 보통 사람에 대한 애정도 없고 심지어 관심도 없더라고. 시나리오를 몇명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이명세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그때 이명세 감독은 우리에게 정말 대단한 분이었거든. 고맙게도 그분이 전화를 해서 이십분 동안 조목조목 잘못된 점을 설명하더니 그냥 배우해라 그러더라. (웃음) 그 무렵 결혼을 했는데 그때서야 먹고산다는 게 겁나는 일이 됐다. 집에 돈도 없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와이프가 연극을 하라고 했다. 내가 연극하는 거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돈도 벌어야 해서 연극을 하니까 재미가 있었다. 그러고나서 <약속>이 들어온 거다.
-김유진 감독은 머리 기르고 있는 게 폼이 나더라며 캐스팅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연출부하고 연극하니까 머리 자를 일이 없었다. 긴 머리가 예술가 같기도 하고. (웃음) 전화가 와서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비디오만 찍고 감독은 만나지도 못했다.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와서 사무실에 갔더니 시나리오를 주면서 한 시간 정도 읽고 마음에 들면 계약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한 거지.
-<약속>은 충무로에서 제작된 상업영화다. 그때까지의 활동 영역과 많이 다른 영화였는데, 거부감을 갖진 않았는가.
=상업영화라서가 아니라 조폭영화잖아. 그게 불편했다. 그런데 같이 갔던 와이프가 출연하라고 하더라고. 미안한데 어떡해. (웃음) 내가 안하겠다고 버틸 뭐가 없잖아. 시집와준 것만 해도 고마웠지. 왜 그랬는지 <약속>을 하면서 김유진 감독이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고, 먹고만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지하게 많이 먹고 있다. 지금도 김유진 감독과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고 계약을 하기보다 그분들이 알아서 내 스케줄을 빼놓는다. (웃음)
-몇몇 영화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주연배우가 되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인생이 바뀌는 고비들이 신기하다.
=나는 내가 평생 음지에서 살거라고 믿었지만 서른다섯부터 양지에서 살게 됐다. 운명이란 게 이상하다. 돌아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던 것 같지만 당시엔 몰랐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테러리스트>에 보이지도 않는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연극할 때는 그쪽에서 좀 쳐주는 배우였는데(웃음) 단역으로 출연하니까 친구들이 너 그렇게 돈이 없냐고 하더라. 그래서 연출부 생활하기 잘한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이 굉장히 꼼꼼한 완벽주의자여서 많이 혼났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고 창피했다. 하지만 나중엔 혼나는 게 당연하지, 모르니까 연출부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진 내가 별거라고 생각했지만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다. 자의식이 강했는데, 자의식이라는 게 실체가 없는 거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자의식이 강했던 게 아니라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차(茶)가 되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내가 20대에 했던 활동은 연극이든 영화든 약이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하면서 술이 되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이젠 차가 되는 영화다. 세 가지 모두 물이지만 약은 치료를 하고 술은 위로가 되고 차는 은은하면서 몸에 좋은 그 무엇이다. 운이 따라서 <왕의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시기와 맞물렸다.
-<태왕사신기>에 출연한다.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거의 없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한 건가.
=1년을 놀았더니 빨리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태왕사신기>도 지난 9월에서 올 1월로 촬영이 밀렸다. (웃음) 무엇보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사신 중의 하나로 담덕의 심복인 북(北)현무인데 멋있는 인물이 아니라 유머가 있고 좀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