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장만옥
2006-01-12
목까지 가리고도 섹시할 수 있다니!
<화양연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난 스무 살 전엔 공부만 했고, 스무 살 이후엔 너만 바라보며 산 게 분명해! 아무도 생각이 안 나!” 선언 같은 나의 외침에 마누라는 만족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글생글 웃는다. 원고청탁을 받고 맨 먼저 한 것이 바로 이런 안전장치 심어놓기이다. 마침내 “써도 돼. 용서해줄게”란 농담 같은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나는 ‘연인’이라는 아주 위험한 단어에 대해 비로소 조금 자유로워졌다.

<화양연화>. 인생의 골목을 스치고 지나간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왕자웨이(왕가위)의 충혈된 집중은 나에게 아주 긴 진동을 남겼다. 차우와 수리첸의 거짓같은 진짜 사랑이 비처럼 붉은 커튼처럼 또는 가로등 불빛처럼 내 중년의 초입에 내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나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영화의 여주인공 수리첸이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스크린 속 인물 중 유일하게 섹시하다고 느낀 여자라는 점이다. 초점이 흐려진 가구와 벽 사이로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곡선(!)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나는 영락없이 일상의 설렘을 간신히 참아내며 버티고 있는 차우(량차오웨이·양조위)가 되어버린다. 목까지 가린 치파오를 입고도 저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 그것은 일종의 기적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실 그녀를 나의 연인으로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영화 <2046>이었다. (이 영화에선 장만위(장만옥) 즉 진짜 수리첸은 단 몇 초밖에 나오지 않는다.) 차우는 <화양연화>의 수리첸을 떠나보냈지만 결국 평생 그녀의 환영을 쫓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가슴 내려앉는 애잔한 고독이다.

사실 남자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이놈의 애잔하고 쓸쓸한 사랑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것은 추억에 대한 사랑이고 사랑에 대한 추억이다. 추억은 이별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펼쳐본 중학교 시절의 명상록엔 웬 놈의 이별시가 그리도 많이 적혀있는지. 제대로 사랑 한 번 못해 본 녀석이 이별의 감정에 가슴이 저미고 눈물이 고였었던 것이다. 사랑의 ‘추억’은, 진짜 사랑이 있었건 없었건 간에 그 자체로, 떠나온 고향 같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같은 것이다. 장쯔이가 아무리 수리첸처럼 입어도 짝퉁일 수밖에 없고, 만나는 상황이 비슷하거나 이름이 같다고 하여 그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윤도현은 노래한다. “언젠가 다른 사람 만나게 되겠지, 널 닮은 미소 짓는. 하지만 그 사람은 네가 아니라서 왠지 슬플 것 같아. 잊을 수 없는 사람….”

안슬기 감독

차우는 가수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평생 소설을 쓰며 진정한 연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 소설은 우주에서 가장 슬플 것이고, 주인공은 우주에서 가장 외로울 것이며, 우주에서 가장 긴 이별과 기다림을 다룰 것이다. 아! 아름답지 않은가? 차우 속 수리첸이? <2046>속 <화양연화>가? 현실의 사랑은 추억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담겨서야 비로소 그 완전한 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내 가슴 속엔, 음악에 맞춰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의 발걸음과 국수통을 든 그녀의 손과 애써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연인’이 장만옥이란 말이지?” “‘내 인생의 연인’이 아니라 ‘스크린 속 나의 연인’이라니까!” 마누라가 약속을 어기고 원고를 봐버렸다. 아무래도 더 쎈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글: 안슬기/<다섯은 너무 많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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