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개봉 한달만에 700만명 돌파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2006-01-31
글 : 임인택
“관객에 대한 빚 자꾸 커지네요”

몰아친다. 도처에 <왕의 남자>다. 어떤 관객은 영화사 홈페이지에 “감독이 영화에 약을 탔나보다”고도 하고, 또 어떤 관객은 “맛있는 떡볶이집 발 끊기가 천근이더니 이 영화는 만근”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신규 관객은 물론, 되풀이 관람객이 넘친다. 물경 30차례까지 본 관객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까지의 집계로 500만명(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을 넘어선 영화 <왕의 남자>는 26일 전국 관객 70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20만명이 웃돈 셈이다. 개봉 29일만의 성적이다. 31일 걸린 <실미도>의 속도를 앞선다. 김이 빠지기는커녕 이번 설에 스크린수를 400여곳(27일 현재 348곳)으로 늘린다니, 300만명을 목표로 삼았던 영화가 ‘마의 천만’을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는 형국이다.

기관차 맨 뒤에서 거드럭뒤스럭 종잡을 수 없는 몸짓으로 이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다. “이젠 됐어, 이걸로 충분해” 한다. 과분한 대접에 ‘배 터지겠다’ 이야기가 아니다. 관객에 대한 빚이 자꾸 커지는 탓이다.

그는 “빚 갚으려고 영화 한다”는 반농반진을 자주 던져왔다. 주로 외국 영화 수입·배급하면서 거머쥔 빚들이다. 그러다 <황산벌> 만들고, 그러다 <왕의 남자> 만들었다. 700만명 관람이 되면서 30억원이 넘는 빚을 모두 청산하게 된다.

“아 글쎄, 빚 다 갚으면 앞으론 어떻게 영화할지 고민이예요. 스스로 학대해야지, 뭐. 아니, 이젠 관객한테 진 빚으로 영화한다고 할까?” 이제 제대로 빚진 것이다.

영화판에선 <왕의 남자>의 흥행 비결을 가늠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들어갈수록 묘연해진다. 결론은 ‘영화 자체의 힘’에 허무하게 가닿는다. 그 힘은, 극장에 잘 오지 않는 장년층까지 끌어당겼다기 보다, 사극의 꼴과 주제에 퍽 낯설 10대까지 영화는 유혹한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천한 광대 장생을 중심으로 공길, 연산, 녹수, 처선 등의 주요 다섯 인물이 다채롭게 얽히면서, 대목대목 이야기는 확장하며 한편 깊어진다.

이 감독은 “10~20대는 멜로적 감성으로 장생과 공길의 관계에 이입되고, 장년층은 장생과 연산을 대비하며 권력과 인간의 본질 관계에 빠져들기도 한다”고 전한다. 모두 제 입장에서 특정의 인물과 관계에 빠져드는 장치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치판도 제 입맛대로 감화된다.

“정치적으로 영화가 소비되는 것, 그냥 즐겁게 봐요. 하지만 입장이나 처지 따라 명분이 바뀌는 거, 저급해요. 상대방을 부정하면서 자신만 인정받으려는 거잖아요.” 어쨌건 정치판은 이 사극의 ‘현재성’과 ‘보편성’을 여실히 증명하며 홍보한 셈이다.

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을 애써 없애려고 해요. <왕의 남자>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가야지, 합니다. 3월에 크랭크인 들어가는 <라디오스타>에 몰입하는데 방해를 받기도 하고요.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환산되는 ‘성과’가 중요하지만 돈의 ‘성분’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돈이 어느 순간 독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그는 실패와 성공을 수차례 거듭하며 “인생을 ‘통’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 진폭이 더 넓어진 것이다. 여유있게 농담을 던졌다. “<라디오스타>로 다시 바닥으로 가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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