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지만, 요즘 아버지들은 스스로를 아버지라 부르기가 민망하다. 부권상실이라는 단어조차 이미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니, 부권이라는 것이 이제 존재하기는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아비 노릇 못한 것에 <브로큰 플라워>의 돈(빌 머레이)처럼 아들의 존재조차 몰랐다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뽑아봤다. 가장 심란한 아버지 워스트 5
5위를 차지한 <빅 피쉬>의 에드워드(알버트 피니)는 아들에게 존경은커녕 믿음조차 받지 못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허풍만 늘어놓았다고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진실은 아버지의 죽음 뒤 밝혀진다. 하지만, 부모님 살아실재 섬기기를 다하지 못한 아들에게 남는 건 회한뿐.
톰(스티브 마틴, <열두명의 웬수들>)은 가지 많은 나무를 심은 탓에 바람잘 날 없는 아버지. 다섯살배기 막내딸부터 스물두살 먹은 맏딸까지, 한명 한명 놓고 보면 너무너무 사랑스럽지만 모아놓으니 웬수가 따로 없도다. 사랑 많고, 아이가 많아서 심란한 아버지라서 4위에 랭크.
3위는 <귀여워>의 주책바가지 아버지 장수로(장선우). 박수무당인 직업도 왠지 ‘아버지’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미묘한 느낌이 드는데다 여자 하나 놓고 아들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라니. 그야말로 콩가루신의 신내림이 내린 인물이 아닐까?
2위는 <패닉룸>의 아버지가 차지했다. 보통 영화라면 그렇지 않나, 이혼한 부인 집에 괴한이 침입했다는 소식에 짜잔~ 하고 등장하는 아버지.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처단되는 괴한들. 하지만, <패닉룸>의 이 아버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맞기만 한다. 이 배역이 브루스 윌리스에게 떨어졌다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까? 여튼, 영웅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 아버지, 가여워서 2위에 랭크다.
1위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가 차지했다. 이걸 1위의 영광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파업을 강행하느라 굶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부인의 유품인 피아노마저 장작으로 패 쓰던 아버지. 그러던 그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아들의 재능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탄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아버지의 강인함과 인간으로서의 심란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 아버지,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까? 너도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내 마음 알 테니…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