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일본영화 신인상을 휩쓴 소녀, <박치기!>의 사와지리 에리카
2006-02-16
글 : 김수경

만약 <로리타>를 아시아 배경으로 만든다면 캐스팅 영순위는 <박치기!>의 사와지리 에리카가 아닐까. 전도연을 닮은 약간 튀어나온 귀여운 이마, 만화가가 그린 듯한 동글동글한 눈망울과 기다란 속눈썹, 작지만 오똑한 콧날, 아직 젖살이 가시지 않은 통통한 볼, 이런 얼굴과는 딴판인 탄력있는 몸매의 사와지리 에리카라면 <로리타>의 후보로 충분해 보인다. 일본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와지리 에리카는 <박치기!>로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스타 시스템을 거친 배우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압둔 1999년 12월 그는 “연예계에 들어가면 아무로 나미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현재 소속사 스타더스트의 오디션에 응해 합격한다. 잡지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 사와지리 에리카는 2003년 중반까지 버라이어티쇼와 정보 프로그램을 오가며 경험을 쌓는다. 이 무렵 그는 그라비아 아이돌(주로 수영복을 입은 채 촬영하는 화보집의 모델)로 유명해진다.

사와지리 에리카의 스크린 데뷔작은 <박치기!>보다 2004년에 먼저 개봉한 모리오카 도시유키 감독의 학원물 <문제없는 우리들>이다. 불량소녀 신타니 마키 역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직후 그는 <박치기!>의 오디션에 응한다.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독님의 질문에 답하는 면접 같던” 오디션을 통해 그녀는 여주인공 경자로 낙점된다. 두달간 교토의 민박집에서 배우와 스탭이 함께 생활하는 단란한 촬영과정에서 그녀를 괴롭힌 것은 한국어가 아니라 간사이 사투리였다. 1986년 도쿄 출생 사와지리 에리카는 “촬영 때마다 사투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몇번씩 듣고 연습했다. 사투리를 지도하는 분과 간사이 출신 감독님의 가르침이 약간씩 달라서 가끔은 헷갈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남자배우들에게는 매일 욕을 퍼붓는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에 대해서도 “태어나서 사람이 그렇게 혼나는 모습은 그때 처음 봤다”고 웃으며 술회했다.

<박치기!>

흰색 적삼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플루트를 부는 경자는 사와지리 에리카의 청순한 매력을 그대로 담아낸다. 하지만 경자는 저고리 해코지에 침묵하고 집안일을 묵묵히 돕는 단아한 캐릭터만은 아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코우스케(시오야 슌)에게 단호하게 “조선인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음악가의 꿈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길 꿈꾸는 적극적인 일면도 스크린에 공존한다. 아보카도 초밥과 노래방을 좋아하고 “좋은 여배우보다 멋진 여자가 목표”라는 현실의 쾌활한 소녀 사와지리 에리카도 마찬가지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임종을 집에서 지켜봤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친오빠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는 <박치기!>의 장례식 장면이나 드라마 <1리터의 눈물>에서 이케우치 아야의 시한부 인생을 연기하며 보여준 샘솟는 눈물은 그러한 슬픈 개인사와 겹쳐진다. 당장 등교하는 학생처럼 잘 어울리는 교복과 해맑은 얼굴의 이면에는 촬영을 위해 단 한달 만에 플루트 연습을 끝내고 조선어와 간사이 사투리를 수없이 되뇌는 근성있는 신인배우의 모습이 있다. 그러한 땀방울은 고스란히 꽃다발이 되어 그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닛칸스포츠> <키네마준보> <블루리본>, 일본아카데미, 요코하마영화제의 신인상은 모조리 사와지리 에리카의 몫이었다. 출세작 <박치기!> 이후 그는 <아수라성의 눈동자> <시노비>로 영화배우의 토대를 다졌고, 드라마 <너무 귀여워> <1리터의 눈물>을 통해 브라운관에서도 주연으로 도약했다. 사와지리 에리카에게 2006년은 본격적인 영화 연기를 시험받는 한해가 될 것이다. <박치기!>의 커플 시오야 슌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공포물 <유실물>, 에쿠니 가오리 원작을 모리타 요시미쓰 감독이 연출하는 <마미야 형제>, 도가시 신 감독의 신작 <천사의 알>, 야기라 유야와 함께 출연하는 멜로물 <슈가 앤 스파이스: 풍미절가>는 사와지리 에리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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