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이 TV를 통해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다. 러시아 TV 방송국과 감독들은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처럼 서구영화에 영감을 공급해온 러시아 소설들을 진정한 모국의 영혼을 담아 다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TV영화 <닥터 지바고>는 8시간짜리 11부작으로 5월에 방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감독 알렉산더 프로슈킨은 “나는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 영화는 당대의 산물이었고, 미국영화였다”고 말해 이 영화를 새로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데이비드 린이 1965년에 만든 <닥터 지바고>는 노벨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이 원작이었지만스페인에서 촬영되었고, 돔형 지붕의 농가처럼 러시아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남유럽 풍경을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영화적인 반혁명의 일부’라고 표현한 이런 움직임은 2005년 말부터 지금까지 세편의 TV영화를 선보였다. 이중 지난해 12월에 방영된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제1권>과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의 <황금 송아지>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 제작될 영화도 여러 편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이 TV영화로 제작돼 방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소비에트공화국 시대에 핍박받았던 소설이 원작이거나 이미 서구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는 것. <닥터 지바고>의 제작자 루벤 디쉬디쉬얀은 그레타 가르보의 <안나 카레니나>와 오드리 헵번의 <전쟁과 평화>를 지목하며 “이 영화들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이건 마치 내가 J. D. 샐린저나 존 업다이크나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대 미국 작가인 그들의 이름을 거론함으로써 러시아 문학의 정수는 러시아인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러시아는 이런 경향을 환대하고 있다. <제1권> 판권을 외국인에게 팔았던 솔제니친의 미망인 나탈리아는 이번에 그 책을 각색하는 작가들은 “<제1권>과 같은 공기를 마셔온 이들이다. 그들이 그러지 못했다면 그들의 부모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대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현재 제작되고 있는 러시아 소설 원작의 영화들은 대부분 러시아인 배우들만 기용하고 있다. 금발의 라라는 잊고, 붉은 머리 라라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