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워낙 보편화됐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도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중국제’는 싸구려의 대명사 같은 거였다. 십대 시절 가슴 뿌듯하게도 ‘소니’라고 새겨진 미니카세트를 사고는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모서리에 조그맣게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배신감이라니. 젠장! ‘메이드 인 파키스탄’이나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는 참을 수 있어도 ‘메이드 인 차이나’만은 참을 수 없다고. 지금은 공산품에서 농수산물까지 중국제 아닌 것을 찾기가 더 힘든 세상이 왔으니 이제 중국제는 싸구려라기보다 대중상품 정도로 그 신분이 ‘격상’됐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무극>을 보면서 나는 10년 동안 잊고 살았던 그 말의 느낌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건, 이건… 중국제잖아.” 뉘앙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정통 ‘중국제’인 <영웅>을 봤을 때 그 맹신적 중화주의에 비위가 상하는 건 있었지만 대륙풍의 호방한 구랏발이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특히 구라의 끝을 달리는 과장된 액션과 현란한 색감의 비주얼은 매력적이었다. 중국제였으나 내 머릿속에 각인된 그 중국제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무극>에서 10년 전의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들게 한 첫 장면은 거꾸로 솟은 머리에 금빛 링을 두리둥실 얹고 다니는 만신의 출연이었다. 주성치 영화에서 촬영기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느린 동작 장면을 연상시키는 걸음걸이로 하늘에서 만신이 내려오는 순간 허걱했다. 남편이 가끔씩 채널을 고정시키면 10초도 안 돼 나로 하여금 “다른 데로 돌려”라고 말하게 하던 중국 무협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을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복장과 헤어스타일과 걸음걸이와 배경이 아니던가.
빛처럼 빠른 우리의 꽃미남 노예 쿤룬이 등장했을 때 소떼들과의 달리기 장면은 또 뭐지? <쿵푸허슬>의 패러디인가? 그렇다면 빼먹은 게 있잖아. 달리는 장동건의 다리를 만화처럼 동그마리 천개로 바꿨어야지.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제’스러웠던 건 장백지였다. 어린 시절 평택에서 살던 이모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양공주’ 언니 방에서 보았던 꽃분홍색 나일론 가운을 처음 봤을 때의 그 황홀함을 재현한 듯한 복장으로 군인들 앞에서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옷 하나 더 벗어주지”라며 옷벗기 고스톱 놀이 스타일의 대사를 날리면서 풍기는 왕비의 기품이라니. 덧붙여진 미스터리는 크리스마스 주일학교 연극무대 스타일의 분장으로 그 효과가 두드러진 장백지의 변화였다. 그녀는 <파이란>에서의 청순하고 <소림축구>에서의 귀엽고 씩씩하던 장백지가 아니었다. 전보다 갸름해진 얼굴에는 그동안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듯했고, 그 결과에는 ‘중국제’ 냄새가 폴폴 났다. 작품과 배역이야 바뀔 수 있겠지만 앞으로 옛날의 청순하면서도 건강한 장백지의 얼굴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사실은 <무극>이 내게 전해준 가장 실망스러운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