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과 <왕의 남자>는 동성애영화인가? 누군가는 동성애 대신 퀴어(queer)하다는 표현을 쓸 것이다. ‘queer’의 사전적 뜻은 이렇다. ‘괴상한, 의심쩍은, 찌뿌드드한, 나쁜, 가짜의, 망쳐놓다, 동성애의’ 등등. 이 중 ‘동성애’란 뜻의 포스가 워낙 강해서 ‘나쁜’ ‘가짜의’ 같은 뜻은 쓰이지 않게 됐다고 한다. 다행한 일인가?
하지만 미안하게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영화치고는’ 괴상하지 않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대자연과 절제된 드라마, 엔딩에서 흐르는 봅 딜런의 음악까지. 관객을 깜짤 놀랠 잔인한 장면도, 시끄러운 소란도 별로 없다. 대신 로미오와 줄리엣 부럽지 않은 애틋한 러브신은 많이 나온다. 이것은 한편의 훌륭한 러브스토리다. 단지 두 남성이 서로 몸을 섞는다는 사실만 뺀다면.
한편 <왕의 남자>는 어떤가? 영화가 1천만 관객 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애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공길과 연산과 장생이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와 잭처럼 몸을 섞고 코가 깨질 정도로 진한 키스를 나눴다고 생각해보자. <왕의 남자>는 저주받은 걸작 사극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왕의 남자>는 장생의 외줄타기 같은 모험 따윈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스킨십은 추하다”는 이성애 공식에 철저할 뿐이다. 세 사람의 관계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마치 막 협상을 끝낸 테이블처럼 공허하게 비어버렸다.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다르다. 이 영화가 좋은 건 솔직함과 현실성 때문이다. 우선 잭과 에니스는 남녀의 역할을 가르지 않는다. 물론 잭이 여성 같은 이미지를 풍기지만, 공길처럼 노골적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통해 동성애를 옹호하려는 일반 동성애영화와 선을 긋는다. 두 주인공이 헤어진 건,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같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처럼 금지된 사랑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무나 맞을 수 있었던 평범한 사고 때문이었다. 당연히 영화는 덜 괴상하고 더 일상적이다. 하지만 ‘괴상한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한 동성애영화의 결말이 늘 괴상하게 끝나곤 하는 게 의아했던 내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하나의 해답을 주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괴상함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