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음성해설은 솔직하고 당당하다. 감독의 말로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 영화라지만, 뻔한 변명이나 항변으로 흘러가 듣는 이를 답답하게 하는 대신 장면 하나하나의 문제점을 철저히 파헤치고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추운 날씨와 촉박한 스케줄, ‘피가 3톤쯤 들어가야 되는데 이러다 개봉 못 하는 것이 아니냐’는 자기검열과의 싸움, 많이 찍어놓고도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 때문에 그만큼 많이 들어내야만 했던 안타까움, 좋은 장소를 잡아놓고도 사소한 실수로 그 보다 못한 장소에 가야만 했던 고민 등을 감독은 또박또박 들려준다. 그 솔직 당당함 속에 자리한 아쉬움이 느껴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킬리만자로>의 음성해설은 창작자의 한풀이 자리라기보다는 영화 밖에서 다시 한 번 관객과 접촉하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지막에 혼란을 겪었던 관객과 찍은 장면 들려나간 배우들에게 미안하다. 더 좋은 영화 만들겠다’는 다짐은 무척 진솔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만드는 여러 가지 목적들 가운데 하나는 창작자와 관객 간의 소통이다. 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에 관해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한 관객의 감상을 꼽는다. 그 관객은 ‘힘들었을 때 영화를 보고,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삶의 희망마저 등을 돌린 막판 인생들이 수두룩하게 몰려나와 피바다를 뒹구는 이 우울한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소통으로서의 영화 <킬리만자로>는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