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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번치 SE> 폭력은 비극을 부른다는 샘 페킨파의 거대한 선언문
2006-03-10
글 : ibuti

<와일드 번치> DVD 제작사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협의해 필름 상영회를 개최했다. 대개의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그렇듯 <와일드 번치> 또한 스크린으로 감상할 때 영화의 매력을 100%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니 썩 괜찮은 DVD 홍보 수단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래된 서부영화를 스크린으로 처음 만날 젊은 층한테 <와일드 번치>는 난감한 영화다. <와일드 번치>는 부인할 수 없는 서부영화의 고전이지만 동시에 서부영화에 사형선고를 내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와일드 번치>를 이야기할 때면 ‘피의 페킨파’란 명성을 되새기게 하는 후반 총격신을 흔히 떠올리지만, 샘 페킨파의 거대한 선언문은 초반 15분에 자리한다. 긴장감이 흐르는 도입부에 이어 광풍처럼 몰아치는 총격전은 미국 건국의 바탕이 된 청교도 정신과 공동체 사회 그리고 경제적 기반을 상징하는 대상을 무참히 짓밟는데, 그 과정에서 군인(으로 보였던 자들)과 현상금 사냥꾼 패거리의 역할이 전도되는 상황은 시대의 비극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이상화된 서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죽음의 강이 될 리오그란데를 건너 멕시코에 도착한 파이크 일당은 그들의 운명이 지옥도에 다다르자 서부 영웅의 최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페킨파는 우정의 가치를 갈가리 찢어 산화시키며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명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서 폭력이 폭력을 거부함으로써 <와일드 번치>가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영화의 배경은 1차대전 직전인 1913년이며, 영화는 미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 최고치에 이를 즈음 제작됐다. 피에 젖은 서부영화의 통렬한 묘비명이 폭력으로 인한 인간 비극의 메타포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서부영화의 팬들이여, 여기선 향수가 아닌 숙연한 감정을 느껴야 할 것이며, 폭력의 피카소란 별명은 이제 그만 거두면 좋겠다.

<와일드 번치>의 감독판은 이미 DVD로 출시된 바 있으나, 영화의 격에 어울리는 특별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페킨파 전문가 4인이 지식을 쏟아내느라 바쁜 음성해설, 샘 페킨파와 서부영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사진, 83분), 오래된 흑백영상을 재구성한 메이킹 필름(33분), 촬영지 탐방(24분), 아웃테이크 모음(9분) 등의 부록은 버릴 것이 없으며, 한국판엔 영화평론가 김성욱의 해설집이 특별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점을 보여준 이듬해, 서부영화의 물꼬를 할리우드로 돌린 페킨파의 저력을 이제 제대로 체험하길 바란다.

제작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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