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조제, 호랑이..>, <메종 드 히미코> 이누도 잇신 감독
2006-03-13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이종근 (한겨레 기자)
차가운 얘기…따뜻한 어법 “평범한 그대로 그렸을 뿐”

이누도 잇신(46) 감독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좋은 일본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개봉한 이누도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30대 영화 마니아들의 격찬 속에 5만명의 관객을 모았는데, 관객 1천만명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빼고서 이 정도 관객을 모은 영화도 많지 않다. 올해초 개봉한 <메종 드 히미코>는 지금까지 7만명이 봤고, 지금도 좌석 점유율이 높다.

이 두편은 내용만 놓고 보면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할 요소가 많다. <조제…>에서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 여자를 사랑한 남자는 여자에게 헌신하기는 커녕, 여자를 그대로 놔둔 채 도망치듯 떠난다. <메종…>은 히미코라는 늙은 게이가 차린 게이 양로원의 이야기인데, 히미코의 딸 사오리가 가족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돈 때문에 이 양로원에 아르바이트 하러 온다. 사오리는 히미코의 파트너인 젊은 게이에게 반했다가 결국 사랑이 불가능함을 확인하고는 홧김에 서방질하듯 직장 상사와 자기도 한다. 이누도 감독은 이런 이기적이고 바보스러워 보이는 행동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차가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법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대신 가슴 싸하게 만든다.

“끝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고 연애”
<메종…> 수입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이누도 감독을 지난 11일 만났을 때, 그의 따뜻한 어법이 관객에 대한 배려인지를 먼저 물었다. “배려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객이 불편해 하지 않는 건)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부정하지 않고 죄의식을 가지지 않기 때문 아닐까. 쓸 데 없고 바보스러워 보이는 행동들도 들어 있는데 평범한 사람들도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메종…>은 독립영화이지만 메이저 영화사의 기획 영화처럼 코믹하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좀더 서늘하게 그리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아주 냉정하다. 그런 걸 찍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과연 내가 인생을 그렇게 철저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누도 감독은 <메종…>의 모티브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게이 노인들의 양로원을 소개하는 기사였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양로원은 유사 가족 공동체의 희망을 담고 있지만 장래가 위태롭다. “히미코 자신도 양로원이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실패를 경험하면서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다.” 사람들을 맺어주려고 애쓰기보다 쉽게 맺어지기 힘든 사연을 드러내는 데에 몰두하는 이 사실주의자는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관점도 대다수 멜로 영화보다 냉정할 것 같다. “<추억>이나 <애수>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들에서도 남녀는 헤어지거나 한쪽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게 사랑이고 연애 아닐까 싶다. 아무리 영화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해도 실제로는, 최소한 한 명이 먼저 죽어서라도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거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바로 영화로 뛰어들지 않고 광고 감독을 경유했던 그는 광고 경험을 소중히 여겼다. “영화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자기 주관과 호불호가 강하다. 광고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런데 그걸 하다보면 내가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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