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100년 동안 아프리카만큼 여성을 놓치고 살아왔다. 악녀와 천사는 영화의 역사가 완성한 여성의 얼굴을 대표하며, 현실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여성에게서 매번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그러니 영화가 여성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을수록 여성이 제대로 표현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 근사한 예로 <자니 기타>가 있다. 레이스 달린 긴치마를 입은 여자가 권총을 휘두르고 남자들이 그녀의 말에 복종하는 <자니 기타>는 니콜라스 레이의 전복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여성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남자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대두된 1970년대를 지나야만 했고, 그 성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한 두편의 영화- <결혼하지 않은 여자>(얼마 전 미국에서 DVD로 출시됐으나 한국 출시는 예정에 없다)와 <글로리아>- 를 우리는 기억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앨리스는 여기에 살지 않는다>류의 리얼리즘영화와 궤도를 같이 하며 현실적이고 지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다뤘다면 <글로리아>는 장르영화의 변주를 꾀한 경우다. <자니 기타>가 남성영화로 알려진 서부영화에 대고 그랬듯이 <글로리아>는 갱스터영화를 뒤집는다.
<글로리아>는 마피아한테 가족을 몰살당한 꼬마가 이웃집 아줌마(나중에 마피아의 여자였음이 밝혀진다)와 함께 도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글로리아는 자신을 구속하는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데(죄의식을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그녀는 단죄를 거부한다), 화염에 둘러싸이면서도 남자를 대체하는 또 다른 남자가 되기보다 여성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 고귀한 동정심과 희생 그리고 약속에 관한 영화인 <글로리아>는 모성이란 꼬리표를 달지 않고도 여성을 진정 강하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레옹>, <글로리아>(1999)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언뜻 엉성한 전개부터 중년 여자와 꼬마의 애절한 사랑의 대화까지 그 어느 것도 장르영화의 규칙을 따르지 않은 <글로리아>가 지킨 할리우드 법칙이 있다면 해피엔딩밖에 없다. 존 카사베츠가 지나 롤랜즈와 함께 만든 여성영화들은 스튜디오 시절엔 왜곡되고 뉴아메리칸 시네마에선 소외됐던 여성에 대한 시선을 바로잡으려는 기나긴 노력의 결과물이라 하겠으며, 그중 진지한 드라마가 아닌 장르영화인 <글로리아>는 부인에게 바치는 귀여운 애정 표현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