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망종>(23일 개봉)은 지난해 칸영화제와 부산영화제의 수상을 비롯해 약간 과장하자면 지금도 하루 걸러 계속 해외영화제의 초청과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 재중동포 장률 감독을 세계적으로 알린 이 영화의 탄생에는 숨은 주역이 있다. 최두영(44) 두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장 감독의 첫영화인 단편 <11세>부터 함께 작업해 장편데뷔작인 <당시>와 <망종>를 제작했다. 두엔터테인먼트는 장감독과의 작업을 위해 만든 영화사다.
화학도 출신·대기업 생활 이력, ‘돈 되는’ 첫 영화 5월에 ‘레디고’
그러나 재능있는 감독을 키운 제작자라는 건 그를 반만 소개하는 것이다. 최근 작업만 보더라도 김응수 감독의 <달려라 장미>에서는 촬영감독을 하고 <6월의 일기>에서는 디지털 색보정을 했다. 또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을 비롯해 최근 봉준호 감독의 <괴물>까지 출연작 목록도 꽤 되는 배우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충무로와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만능 일꾼 또는 해결사다.
“제작자를 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본래 하고 싶었던 촬영 공부에 도움이 될 것같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10년 가까이 색보정 일을 했어요. 거기서 <박하사탕>으로 만난 이창동 감독이 장 감독을 소개시켜주면서 이 친구의 재능에 매료돼 제작까지 나서게 된 거죠.”
화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 때부터 영화광은 아니었어요. 회사 다닐 때 단편 영화 찍던 친구의 부탁으로 출연을 하면서 재미없던 직장 생활을 때려치울 핑계거리를 만든 거죠.” 90년 영화아카데미에 합격하면서 3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 뒀다. 촬영을 전공한 그는 촬영의 기술적 부분도 익히고 돈도 벌겸 영진위(당시 영화진흥공사)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회사 다니고 밤에는 단편 영화를 찍으며 실험영화연구소에서 공부도 하는, 그러면서 독립영화를 하는 후배들이 부탁할 때마다 배우로, 스태프로 달려가주는 1인다역으로 살아왔다.
<망종>이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이제 전보다 수월하게 장률 감독과의 파트너십을 이어갈 수 있겠다 했더니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는 의외의 답이 나온다. “준비하는 작품 중에 <두만강>이라는 제법 큰 프로젝트도 있고,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장 감독이 저와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돈 때문에 우정을 부러뜨리기 싫어요. 다른 데서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또 같이 할 수도 있는 거죠.”
최근 최 대표는 처음으로 ‘돈 되는’ 영화제작에 나섰다. 신인 김한민 감독의 ‘토종추리극’ <극락도 살인사건>의 투자와 캐스팅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5월 중 촬영에 나선다. 젊은 남자배우 3인방 가운데 한사람의 출연이 확정됐다. “독립영화건 상업영화건 진심이 있는 영화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어요.” 그 목표지점을 위해서 최 대표는 그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오늘도 역할 가리지 않고 전방위에서 “짐승같이” 분투하고 있다.